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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영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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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성만 본부장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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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차는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는가 알아보자. 옛날 우리는 망자(亡者를 상여로 운구하여 장례를 치루었다. 사람은 죽으면 화물이 되어 화물칸에 탑승하게 되고 육로에서는 화물차로 고인을 운송 하였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시게 되면 치료비를 내지 못하는 일이 있다 보니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치료비를 받아오는 수금 사원을 고용하였다. 수금사원은 수금을 잘 하려다보니 자연히 큰소리를 치고, 폭력을 사용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건달이나 주먹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수금사원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은 병원에 입원하여 1년이 넘어 2-3년이 지나면 수술도 여러 번 받게 되니 치료비는 서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금액이 되어 자포자기를 하게 만든다. 이미 재산은 치료비로 탕진 하여 맨손 밖에 없는 상태다. 그래서 긴병에는 효자가 없다고 했다. 우리 주변에서는 부모님 치료비를 지불하지 못하여 시달림에 견디다 못해 싸움까지 하고 봉변당하는 일을 종종 보게 되니 겁도 나고 심히 걱정이 되어 나이 먹고 죽을 때에는 하루 밤사이 잔병 치례 없이 죽어야 할 텐데 입에 달고 지내던 세월이 있었다. 자식들에게만은 짐이 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은, 지금도 똑 같은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아울러 병원에서 치료 받다 돌아가시게 되면 살던 집으로, 고향으로 이송하게 되는데, 1950년대에는 생활이 어려워 고인을 운송하였는데 운송비가 없어 고인을 모른다고 외면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보니 고인을 운구 할 수 있는 전용차를 만들게 되었고 고인의 운송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운구전용차는 고인의 직계 가족들과 함께 동승하여 운구를 하면 유족을 못 찾아 고인을 실고 오고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여객버스로 운구하는 것을 법으로 규정하게 되었다. 여객버스에 화물을 실고 운송 할 수 있도록 특수 여객버스라는 이름으로 고인을 운구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차량을 신차로 만들어야 하는데 운구하는 물량이 얼마 안 되고 영구차로 사용하다가 다른 용도로는 사용 할 수 없으므로 폐차하기 직전의 중고차를 개조하여 영구차를 만들게 되었다. 그 때의 버스는 엔진이 앞쪽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뒤쪽을 사각으로 따고 관이 들어 갈수 있도록 만들었고 둘레에는 의자를 놓아 유족들이 둘러앉자 고인을 모시고 운구 할 수 있도록 했다. 차량이 중고차이므로 낡아 고장이 잦아 운구시간이 지연되어 하관시간을 지키지 못하니 장례식이 정말 장례식 되어 상주의 가슴을, 유족의 마음을 한번 더 울리고 아프게 했던 것이다. 심지어 운구도중 차량이 고장이 나면 상상을 초월한 말 한 마디가 유족의 마음에 한으로 남아 유족의 삶을 다치게 하여 폐인을 만드는 경우도 간혹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본다면 고인 생전에 가족이나 형제간에 맺혀 있는 한이 많으면 저승에 들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고 있으니 시신을 못 가게 막아 영구차를 고장을 나게 한다는 것이다. 고인의 혼이 원귀가 되었나봐 라고 하는 소리를 유족이 들으면 상주의 가슴에 대 못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하관시간을 맞추지 못했으니 온갖 낭설이 다 들리니 상주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고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여 불안하게 생활하게 되고 일이 잘 안되거나 가족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걱정하고 고민하고, 상념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우울증이 되어 고생을 하게 된다. .

한편 농어촌에서도 젊은이들은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도시로 공장으로 시골을 떠나다보니 시골에서 장례가 나면 상여로 운구를 했는데 상여를 맬 사람이 없어 32명의 상여에서 24명으로 24명에서 16명으로 줄고, 그 인원마저 채우지 못하니 새로운 일회용 상여가 등장 하게 되어 8명-6명으로 운구를 하게 되었으나 그나마 사용이 뜸하고 대다수가 상여 사용을 기피 하고 영구차를 사용하고 있다. 영구차를 이용하는 수효가 2배 3배로 증가하고 소득이 증가하여 생활환경이 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입맛도 높아지게 되었고 매사에 고급스러움을 선호하며 품위를 찾게 되었고, 가정 장례에서 예식장의 장례로 바뀌다보니 그에 따른 영구차도 새롭게 단장하고 바뀌었다. 중고차에서 새 차로 리무진 버스로 만들다보니 버스가격이 1억원 대를 호가하다보니 영구차로 10년사용 후에는 반드시 팔아야 하기에 영업용을 자가용으로 변경이 쉽게, 자가용으로 변경하여 놓으면 일반인들은 영구차로 사용한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하여, 일반 관광버스로 속이기 위하여 버스 밑에 있는 기존 화물칸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단순히 눈앞에 이익만을 위하여 생각해 낸 것이다.

그로 인하여 우리 의식의 크나큰 변화를 가져올 줄은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이다. 새 차를 사용하니 좋고, 위생적이고, 모양새도 좋고, 품위도 있고, 고장이 없으니 유족의 가슴 아픈 일이 생기지도 않으니 좋고, 그저 눈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것만 보고 말았다.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할 도리와 예의, 생명의 존엄성을 까맣게 잃어 버리고 말았다. 그

저 눈에 보이는 편리함만 추구 했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고인을 발아래 아니 밟고 운구하여 장례를 치루는 민족은 유일하게도 우리 민족뿐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랑하는 나라가 첨단 과학문명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는 저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살아가는 미개한 원주민들도 예의가 없다고 안하고 고인에게 예의를 갖춰 여러 명이 어깨위에 매고 장례예식을 치른다. 그런데 우리는 예의도 없는 운구를 자랑스럽게 하고 있다. 창피하게도 경제대국이면서도 교육열이 세계제일인 나라에서 예의도 도리도 없이 발아래 모시는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도덕과 예의, 효는 아예 땅에 떨어졌고, 자식의 도리보다는 자신의 이익만 찾고 절차 보다는 편리함만 추구하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의 자존심도, 효의 정신과 양심마저도 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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