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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일본의 유교는 어떻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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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성만 본부장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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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만 본부장 1868년 출범한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새로운 일본건설을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당시 뛰어난 한학자였던 이토 히로부미는 서구화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했다.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기초를 놓은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기치는 ‘탈 아시아론’ 을 주장하며 중국 전통의 유학문화를 맹비난 했다. 그는 유교를 국가와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저해하는 적으로 간주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전까지는 철저한 신분사회였다. 쇼군을 정점으로 270명의 다이묘, 그 아래의 사무라이 그리고 평민과 천민으로 구성되어 있던 철저한 신분사회였다. 그러나 천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일한 신분으로 바뀌게 되었다. 한 마디로 모두 평등해진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하여 유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결국 약 265년간의 쇄국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우리의 근대사

그러면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어떤가 살펴보자. 이승만 대통령은 서구문명을 받아 민주주의의 정당정치를 실현 시켰다. 분단된 나라의 한쪽 대통령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북진통일이라는 구호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쟁을 만났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을 물리치겠다고 조국근대화의 구호를 만들었다. 이러한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인 박 대통령은 결국 새마을 운동과 새마을 정신을 만들었다. 경제살리기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재벌들을 양산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부흥을 이뤘지만, 새로운 정경유착의 씨앗을 뿌리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전두환 대통령은 정의사회 구현을 외쳤다. 삼청교육대를 통한 순환교육을 했지만 그로인한 피해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의 동생 전경환은 오히려 새마을 운동을 정의롭지 못하게 타락 시켰다.
노태우 대통령은 보통 사람을 외쳤다. 하지만 가난의 한이 부정부패를 불러오게 되었고, 결국 법정에 서게 되는 대단히 특별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 통치를 외치며 새로운 민주주의를 약속 했다. 하지만 그의 시대는 왕자 통치로 끝났고 새로운 경제 신탁통치 IMF를 부르고 말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루며 제2건국을 외쳤다. 햇볕 정책을 만들어 북한을 오고가는 길을 열어 노벨 평화상으로 세계의 인정을 받았으나 이들 역시 전 정권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참여하는 참여정부를 외쳤다.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막강한 공권력의 대통령에서 아주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만들었고 인식시켰다. 누구나 만날 수 있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비리에 연류 되어 자살하는 대통령이라는 오점을 남겼고 죽어서도 정치를 하는 대통령이 되었다.

현실의 우리

유교문화 속의 이분법적인 힘의 논리를 보면 하늘과 땅, 남과 여, 왕과 백성, 부모와 자식들이 주고받는 힘은 대표적 존재들이다. 이 존재들 속에서 힘은 상하 수직의 루트를 따라 일방적으로 전달된다. 이로 인한 발언권 부재는 시부모와의 갈등이 되었고, 자유의지 억제, 남성우월주의, 경제적 종속 등을 볼 수가 있다. 유교의 최대가치는 효도 사상이다. 한국인들의 뇌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효도는 가정의 화목을 지탱해가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역기능으로 효도가 가정파괴범으로 변질 되어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노인들의 여가활동은 손자들에게 다 빼앗기는 것 같다. 치매환자나 중병환자들의 간호까지도 효도의 비명아래 가정에서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무거운 짐을 맞벌이 부부에게 강제로 지우고 있다.
백의민족의 정기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세 가지 세대가 존재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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