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들국화의 계절이다. 흔히 산에 피는 노란색의 산국을 들국화라고 하는 데 실은 가을에 산과 들에 피는 국화과의 들꽃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바닷가의 습지에서는 갯개미취, 좀 건조한 곳에서는 갯쑥부쟁이, 암벽에서는 해국이 가을의 아름다움을 장식한다. 산에서는 산국과 감국, 쑥부쟁이, 개미취, 그리고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핀다.

이들 가운데 가장 가을을 대표하는 꽃은 구절초이다. 그러기에 구절초가 피면 가을이 오고 구절초가 지면 가을이 간다고 한다. 구절초는 5월 단오에는 줄기가 다섯 마디가 되고, 음력 9월 9일이면 아홉 마디까지 자란다 하여 구절초(九折草, 九節草)라고 부르는데, 9월말쯤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10월 하순에서 11월 초순이면 절정을 이룬다. 가을이면 국화 전시회가 열리는 때를 전후하여 전국의 여러 곳에서 구절초 축제도 열린다. 사람의 손길에 다듬어진 국화와는 달리 구절초는 절로 자라 피어난 것이기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취하게 한다. 무리지어 피어있는 구절초가 바람이라도 불면 하늘거리며 춤을 추는 것이 마치도 나비들의 군무를 보는 것 같다.

구절초는 예부터 부인병에 좋은 약재로 써왔다 그래서 꽃말이 ‘어머니의 사랑’인가 보다. 하지만 위장의 활동을 돕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기능이 있어 남녀 모두에게 좋은 약재인데, 음력 9월에 채취한 것이 약효가 가장 좋다고 한다. 병원이 멀었던 때 시골 집 처마 밑에 뒷산에서 캐어온 구절초를 짚으로 엮어 매달아 놓은 것을 본 것이 기억난다. 필요할 때 달여 먹기 위한 일종의 가정상비약이었으리라. 구절초가 절정일 때 꽃을 따서 그늘에서 말려 두었다가 더운 물에 꽃잎 두세 개를 띄워 마시면 신선이 마시는 차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구절초가 가을을 대표하는 꽃인 것은 백두산에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전국 어디에서나 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똑같은 구절초가 아니다. 꽃의 색이나 잎의 생김새, 그리고 자라는 곳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피어난다. 백두산의 척박한 화산재에서 자라는 바위구절초, 황해도 서흥 지방의 참나무 숲에서 자라는 서흥구절초, 한탄강의 강가에 나는 포천구절초, 중부 이남의 낙동강 변에서 자라는 낙동구절초, 한라산의 해발 1300m 이상에 나는 한라구절초 등등. 대부분의 구절초가 흰색이거나 분홍색인 데 서흥구절초는 자홍색으로 특별한 매력을 풍긴다. 마침 서흥구절초를 분양하는 곳이 있어서 금년 여름 늦게 포트 묘를 구입하여 뜰에 심은 것이 몇 송이 꽃을 피웠는데 내년에는 한 아름 꽃다발을 선물하리라. 뜰이 없더라도 구절초 한 포기쯤 화분에 가꾸어 가을을 즐기는 여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