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정

문화이야기 분류

전선에 서다 (3)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때는 1933년 1월 31일, 히틀러가 독일 수상에 임명되었다. 그의 목표는 원래 대통령이었으나 힌덴부르크 장군의 명성을 넘지 못했다. 낙선한 것이다. 그 뒤 히틀러는 권력의 야욕을 버리지 못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아들과 은밀한 계약을 맺은 것이다. 당시 대통령은 나이 많고 병약해져 있었다. 그의 아들은 자신도 권력을 갖고자 당시 급부상하고 있는 나치당의 당수인 히틀러와 정략적 연합을 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아들은 아버지에게 “히틀러는 대단한 정치인이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정권을 인수할 것이니 이번 기회에 히틀러에게 수상 자리를 임명하면 아버지도 좋고 나도 좋을 것이다”고 위협했다고 전해진다.
독일 수상 자리에 오른 히틀러는 곧 “아리안법”을 공포했다. 이 내용의 골자는 “유대인들은 이방인이므로 독일내 모든 공직에서 유대인을 축출하며, 그들과 결혼한 자들은 결별해야한다”였다. 이혼을 강요하는 말이었다. 이 법의 공포와 함께 독일 전역에서 유대인을 차별하는 움직임이 공공연하게 일어났고, 공직을 유지하기 위하여 유대인 아내와 이혼하는 사례가 흔히 벌어졌다. 이 유대인 박해는 나중에 비인간적이며 무자비한 범행이었던 홀로코스트의 시작이었다.

니묄러, 본회퍼 목사를 위시한 고백교회의 목사들은 일제히 항거하였다. 하나님 앞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 히브리인이나 헬라인의 차별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국가가. 문화의 대국이라고 세계에 알려진 독일에서 이런 악법이 공포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교회에서조차 이런 악법을 적용하라는 나치에게 수긍할 수 없었다. 본회퍼의 저항은 곧바로 나치의 검열에 걸려들었다. 그전부터 나치 교회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본회퍼는 더욱 요주의 인물이 되어갔다. 반대로, 시대의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진리와 정의의 횃불을 높이 든 이들은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쓰임을 받게 되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