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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증언들|전선에 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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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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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 목사는 나치 정권의 요주의 인물로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대학에서 떠나야했다. 정권은 대학에까지 마수를 뻗쳐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교수들만 추켜세우고, 반대하는 이들을 몰아내었다. K.바르트 교수는 본대학에서 신정통주의 신학을 가르치며 자유주의 신학과 정치화하는 신학에 저항하고 있었다. 나치는 바르트교수를 고국으로 돌아가라며 교수직위를 강제로 박탈하였다. 그는 고국 스위스로 돌아갔다. 그 후 취리히 근교 작은 마을에서 목회하면서 <교회교의학>이라는 필생의 업적을 정리하였다. 바르트라는 학자에게 핍박은 정규 교수직에서 떠나는 불운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는 세기의 저서라고 불리는 방대한 교의학(Dogmatik)을 집필하는 환경에 몰입할 수 있었다.
본회퍼에게 핍박은 어떠했을까. 나치에게 쫓기던 그는 무엇보다도 신학 교육 현장에서 내몰리고 있었다. 나치주의자들로 점령당한 독일 대학, 그가 있던 베를린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학을 떠나 지방에 성경에 기초한 목회자 양성기관을 세웠다. 당연히 비인가 신학기관이었다. 나치는 비인가라는 명목으로 교육을 방해했다. 기관원들이 학교를 감시했고, 나중에는 학교 시설, 도서관을 훼손하기까지 했다. 본회퍼는 학생들을 보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자진폐쇄 형식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자신이 갈 수 있는 데까지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나치가 주장하는 왜곡된 신앙 사상에 혼란스러워 하는 양들을 위로하였다.

그는 해외에도 수많은 동지들이 있었기에 본회퍼에게 해외로 도피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또한 해외에서 살고 있는 독일 신앙인들도 여기저기서 본회퍼를 간곡히 요청하고 있었다. 그는 해외 설교여행 중 이런 제안을 수도 없이 받았다. 하지만 본회퍼는 그때마다 고국으로 돌아왔다. 나치는 그가 귀국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는 적진과 같은 고국으로 돌아왔다. “길 잃은 양떼가 고향에서 목자를 기다리는데 목자가 어디 딴 데를 갈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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