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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 서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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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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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떼를 섬기는 목자로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치는 설교자로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선포하는 한 성도로서 어떻게 암살이라는 생명을 죽이는 일에 가담할 수 있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외치는 목회자로서 어떻게 암살단에 가담할 수 있는가. 본회퍼의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히틀러가 수많은 국민을 전쟁에 몰아넣고, 유대인을 “저질민족, 열등민족”이라며 마구잡이식으로 생명을 유린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사탄의 성육신(incarnation of satan)이라고 결론지었다. 만약 사탄이 인간의 모습을 한다면 아마도 히틀러 같은 정신, 행동을 할 것이란 판단이었다.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초인간적 잔인성, 그것은 사탄의 본체였다고 결론 내렸다. 소극적 저항을 지나 암살이라는 적극적 저항에 가담하게 된 것은 한 인간으로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최선이었다.

본회퍼 목사가 저항단체에 가담한 또 다른 이유는 두 가지 더 있었다. 하나는 독일 교회전통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후 독일을 위해서였다. 전자는 나치와 손잡은 제국기독교인들이 독일 기독교의 맥을 잇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고백하는 진정한 교회를 세워야했다. 또한 전쟁이 끝나면 연합군들에게 독일 전통을 고수한 이들이 나치가 아니라 저항단체였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본회퍼 목사는 독일 기독교의 외교역할을 하는 부분을 담당했다. 그는 해외로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백교회가 독일 교회의 전통을 잇는 교회라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전쟁 이후 독일과 교계를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가 협의하였다. 교회재건을 위하여 헌신했던 것이다. 나치의 극렬한 탄압으로 고백교회는 분열되고 응집력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고백교회는 살아있었다. 차디찬 겨울 동토(凍土) 밑에서 피어오르는 새싹과 같이 고백교회는 봄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해방의 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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