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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복음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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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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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 중에는 기독교인이 많다. 은혜를 받고 성령을 체험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시인이 많은 것 같다. 일부에서는 성경이 시 또는 창조문학이라고 한다. 비유와 은유 같은 말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한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려고 모든 생각과 세상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생각하고 깊은 기도에 들어가면 방언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것은 오로지 기독교인만 할 수 있는 은혜의 체험이다. 그 은혜는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야를 밝혀 준다. 하나님의 은혜의 옷 입고나면 항상 보는 물건 보아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같은 사물을 보고 또 보아도 볼 때마다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 느낌을 글로 옮기면 시가 되기 때문이다. 그 느낌을 은혜의 성령님께서는, 쓰지 않은 깨끗하고 새로운 표현의 글과 언어까지 주시니 신기하다. 아울러 이미지를 머릿속에 새겨 주시는 자상한 분이시다.
그럼 사물과 물건은 뭐가 다를까 한번 생각해보자. 물건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하여 인간의 뜻에 따라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 쓰는 도구다. 사물은 즉 자연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해놓으신 자연을 사물이라고 하며 사람이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에는 사명이 있고 생명이 있고 소리가 있지만 물건에는 사명과 생명 소리가 없고 오직 편리함만 있고 사람을 위하여 존재 할 뿐이다. 그래서 그렇지 우리는 사물보다는 물건을 좋아하며 더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쓰며 물건을 소유하기 위하여 욕심을 부리고 평생을 물건과 싸운다. 그러나 자연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 존재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서로가 대가 없이 나누고 주고받으며 베풀며 창조주의 뜻에 절대 순종하면서 살아가고 존재한다. 자연은 소유가 없고 탐욕하지도 않는다. 오직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항상 서 있고 시간에 순종할 뿐이다.
김춘수 시인을 교회 밖에서 핀 예수의 꽃이라고 일부에서는 표현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는 한국 현대시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다. 김춘수(1922-2004) 시인이 지은 시 ‘나의 하나님’ 이라는 시는 문학도들이 좋아하고 애송하고 있다는데 이를 한번 들여다보자. 아쉽게도 이 시는 기독교의 주목을 받지 못 한 점이 의아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죄송한 생각으로 이 시 "나의 하나님" 를 소개 하고자 한다.

나의 하나님
김 춘 수


사랑하는 / 나의 하나님, 당신은 /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 슬라브 여인의 / 마음속에 갈앉은 /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 못을 박아 / 죽일 수도 없고 /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 대낮에도 / 옷을 벗는 어리디 어린 / 순결(純潔)이다.
三月에 / 젋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 이는 / 연둣빛 바람이다.


김춘수 시인은 기독교인이 아니다. 자신의 유치원시절과 학창시절을 회고하는 자서전적 에세이(나를 스쳐간 그) 연작의 수필에도, 평론에도, 시에도 기독교인이었다는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그의 수필이나 시에는 "예수" 가 있다. "내 속에 자리한 예수" 라는 수필도 있다. 이와 같이 김춘수 시인의 글에는 예수가 깊숙이 자리하고,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체험한 하나님은 우리나라 기독교 126년의 성숙함을 확인하고 느낄 수가 있다. 정말 은혜의 감동이다. 이 시를 감상하려면 필히 성경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나의 하나님을 이해 못하니 이 또한 전도의 효과가 얼마나 큰 것인가? 문학을 복음화 해야 할 이유다. 이와 같이 무한한 대자연의 조화를 노래하는 문학이 복음화 되어야 만 하나님 창조의 사명을 따르고 순종하는 백성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문자 언어로 영원히 빛내고 찬양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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