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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오늘 복음화 셋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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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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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일들이 교훈되어 오늘의 길을 열고 내일의 꿈으로 사는 것 같다.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동떨어진 과거를 생각한다고 신세대는 야단이지만 나이 먹은 노년들은 모이면 서로가 살아온 옛 이야기로 재미를 주고받으며 보람을 찾아 오늘을 밝힌다. 그래도 그 때가 좋았다고 한다. 그것은 세상의 주역이 되어 이끌었던 시기였기에 많은 이야기가 있다. 기성세대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한발 뒤에서 바라만 보고 있으니 그 시절을 좋아 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고개를 들고 세상을 엿보고 있는 신세대야 그 속 깊은 사연들을 알리가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 고생이 오늘의 현실을 만들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지고 주춧돌을 놓은 것만은 사실이다. 신앙생활도 교회 부흥을 이끈 장본인 들이다. 옛날 잘나가던 방식에서 조금 수정하여 사용하니 신세대들에게는 먹혀들지 않고 소리만 요란하다.

일부에서는 정체성이 상실되었다고 하고, 포퓰리즘이 많다고도 하고, 소통이 단절 되었다 한다. 이모든 주장은 맞기도 하고 일리가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나는 것이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을 했기에 오늘의 풍족함을 이룰 수 있었고 공부를 열심히 했기에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개발하여 생활환경을 바꾸었다. 여름에는 파리가 새까맣게 식탁에 앉던 시절에는 화장실에 구더기가 바글바글 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은 비데로 깨끗하고 청결하게 뒤를 마무리한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문맹의 눈으로 말씀보고 읽었던 시절에는 성경으로 눈과 귀를 뜨게 했고, 천대 받던 언문이 성령의 힘으로 한글로 거듭 태어나 지금은 세계 40개국에서 3000개 대학에 한글학과를 만들어 우리의 글을 배우고 있다. 이는 성경을 한글로 번역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은혜요 역사다. 예배의 처소도 땀 흘리고 추위에 떨던 천막에서 지금은 냉난방이 잘되어 따뜻하고 시원한 멋진 건물에서 예배를 드린다. 가족 같고 형제처럼 사랑을 나누던 교우들은 부흥의 물결을 타고 낯설고 성조차 모르는 교우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현실에서 크기와 숫자로 자랑하고 은혜를 받는다고 말을 한다. 말 그대로 우리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은 언어나 글로는 표현하지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한 일 보다는 어쩜 우리가 불편하여 우리환경을 개선한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지는 않은지 한번쯤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일이다.

처음에는 우리 유교관습을 하나님 말씀대로 바꾸려고 얼마나 핍박을 받았던가? 장례예식을 보면 교인들 모여 내 일처럼 고인을 위하여 밤을 지새워가며 꽃을 만들어 상여에 달았고 소매를 걷어 붙이고 가사 일을 도왔던 일이 엊그제 같아 눈에 선한데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상조회사에 넘겨주었고 상술로 만들어진 서비스에 은혜를 받는다고 말하며 교묘하게 사람의 심리와 마음을 자극하는 이벤트를 뜻도 모르고 따라한다. 성경의 검증 없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예식을 바꾸어 가고 있다.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보다는 우리 생활에 편리하도록 말씀을 해석하는 것도 같다. 어느 대형 교회에서 목사님 결혼식을 보고 놀란 일이 있다. 하나님께 예배를 올리는 성전에서 결혼예배를 드렸다. 결혼 예배는 사람과 사람간의 혼인 약속이 아니라 결혼을 한다고 하나님께 고하는 신성하고 존엄한 예배이며 제사인 것이다. 그런데 예배도중에 신랑인 목사님이 신부에게 하는 세리머니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성도가 아닌 목사님께서 세리머니를 성전 안에서 예식 도중에 할 수가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함께한 장로님이나 성도들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왜 나만 충격을 받는지 모르겠다. 나는 잘못된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물며 유교의 조상제사를 모실 때에도 절대로 잡담을 금하고, 엄숙하고 근엄하게 모신다. 그러나 요즈음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리생활을 편하고 편리하게 한다.

이에 물든 우리는 제사도 편리하게 남에게 부탁하여 대신 모셔드린다. 기일도 고인의 위주에서 산사람이 편한 때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귀신들도 스스로 챙겨야 제사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주일 예배도 하나님 보다는 은혜를 앞세워 광고를 먼저 하는 예배가 등장하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름은 오직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지 논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단지 아쉽고 답답한 것은 다른 것들은 다 발전하여 편한 환경과 새 제품이, 새 방식과 규칙이 만들어 지는데 기독교의 문화나 생활은 그대로 유교관습에 묶여있고 교회는 성장하여 대형화 되었지만 신앙 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성도가 서로 만나는 이야기의 소재 역시 한정되어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 속에서 새로운 생활 상품은 많이 개발하여 내어놓는데, 신앙생활에 필요한 새 상품은 이론뿐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은 관습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한쪽 생각과 마음 이상은 주안에 있고 다른 한쪽 삶의 문화 주님 밖에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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