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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와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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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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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심성을 형성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유교적 가부장제이다. 가부장제도는 유익한 면이 많다. 가정의 아버지가 중심을 잡아주면서, 가정의 경제권을 책임진다. 아이들은 크나큰 우산이 되는 아버지에 의지하여 성장한다. 아버지의 존재는 비빌 언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다른 한쪽에서는 독재자요 폭군으로 변하기도 한다. 소설가 카프카가 남긴 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유약한 어린아이였던 자신에게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에 대해 절규로 가득차 있다. 아버지의 자연스런 행동이 아들에게는 숨막히는 억압이 되었다는 고백이다.
호이징아의 <호모 루덴스> 는 다른 말로 풀자면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연구이다. 놀이는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기본 행동이다. 놀이가 없는 아이는 성장하지 못하며, 놀이를 상실한 성인은 권태에 떨어지거나 일탈에 함몰된다. 현대인이 얻은 마음의 문제는 놀이를 제대로 놀지 못하는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삶은 하나의 놀이인데 규범과 규정으로 가득차 버리니 놀이가 개제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놀이가 없는 삶, 직장, 학교, 나아가 교회는 숨막히는 감옥이 될 수 있다. “놀지 말고 공부나 해!!!” 이런 명령이 싱싱하게 자라나야할 아이들을 얼마나 숨죽이게 했는가.
호이징아는 예배도 놀이라고 본다. 이른바 거룩한 놀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과 놀아주셨다. 자신의 백성들과 춤추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그렇게 백성들과 ‘놀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런데 오랜 세월동안 엄격한 가부장들이 예수님을 근엄한 훈장으로 바꿔버렸다. 예수님을 윤리학자나 도덕주의자로 변장하려 한 것이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웃으시며 즐거워하시는 주님을 상상해 본다. 자기 백성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춤추시는 예수님을 그려본다. 혹, 한국 기독교는 너무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것은 아닌가? 웃으시는 예수님을 십자가 뒤로 보내고 채찍에 맞으며 피 흘리는 예수님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성에도 균형을 잡아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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