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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가 복음화 되어야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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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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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21), 애초부터 복음은 이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을 생활문화를 겨냥한 것이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이야기는 멀고 먼 하늘의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생활문화와 환경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천국 이야기는 우리들의 생활이야기를 고스란히 닮았다. 공중에는 새들이 날고 들에 꽃들이 피는 세계,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어부들이 밤새 고기를 잡으며, 상인들이 값진 진주를 찾아다니는 세계, 아들 결혼을 위하여 아버지가 잔치를 벌이고, 들러리들이 늦은 밤 신랑을 기다리다가 졸고 있는 세계, 혹은 때 아닌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집주인이 실례를 무릅쓰고 밤늦게 친구의 집 문을 두드리거나,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아버지가 잠을 설치는 그런 세계, 돈이 좋아 뇌물에 눈이 먼 재판장이 억울한 과부의 불행에 애써 눈을 감고,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대며 도움이 안 되는 잔치는 약삭빠르게 피해가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생활 그대로의 세계다. 하지만 하늘나라가 이 땅의 나라와 다르듯이, 천상의 복음은 지상의 삶과 동일하지는 않다.

그래서 복음은 단순한 삶의 묘사를 넘어선다. 복음이 묘사하는 현실은 정확하겠지만 사실 복음의 핵심은 정확한 삶의 묘사에 있지 않다. 가령 토마스 하디가 ‘귀향’이라는 소설의 첫머리에서 그려내는 영국의 자연, 혹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에서 포착해내는 인간의 심리는 성경의 어느 이야기 못지않게 흥미롭고 재미있다. 또한 톨스토이가 그려내는 정치한 삶의 풍경들 역시 우리들을 감동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문학은 본시 삶의 묘사에서 멈춘다.
삶을 멋지게 그려 낼 수는 있지만, 그 삶에 손을 대지는 못한다.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생활의 이야기는 될 수 있지만, 복된 이야기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반면 복음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서는 선포요, 말씀이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의 현실 속으로 일상생활 속으로 도래하는, 혹은 침입해 오는 하늘의 이야기요, 진리이므로 생활화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 일상생활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을 때에 우리는 생활화해야 한다. 말로만 하고 이론으로 해석하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듣고 먹어야 하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복음 역시 때로는 우리 생활의 실상을 묘사하는 것도 같지만 이는 일상적 가시광선에 포착된 세상이 아니라 천상의 빛에 의하여 드러난 실상이다.

복음은 우리 밖에서 진리의 빛으로 들어와 쏘이고, 이 빛으로 우리 일상생활의 한계를 드러내고 우리의 죄와 죽음의 실상까지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러낸다. 그러면서 복음은 일상생활의 한계를 넘는 우리의 생명을 이야기한다. 쉽게 말하자면 복음은 두 얼굴을 가졌다고나 할까? 익숙한 선물 꾸러미속의 비수처럼, 트로이 목마속의 적병들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그림 속에 일상생활을 비트는 긴장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천국의 복음은 친숙하면서도 낯설고 반가우면서도 또한 두렵고 무섭다. 쉽게 믿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헌신적으로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 복음이다. 우리의 세상 한 가운데서 복음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일상과는 다르다. 그래서 복음속의 이야기는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체험을 해 봐야 알 수 있고 이해가 되는 것이다. 어느 목자가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다(눅15:3-7). 목자는 그 양을 찾아 나선다. 양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들판을 헤집고 양을 찾는 목자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런데 그의 행동은 세상 현실로 볼 때는 이상하다. 그는 99마리의 양을 사자나 늑대 들이 출몰하는 광야에 그냥 버려둔다. 1의 수보다 99의 수가 크다 우리들의 세상에서는 분명 목자의 행동이 어리석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집착하는 목자의 모습은 세상의 상식과 지식을 벗어난다.

하지만 이런 어긋남 사이로 하늘의 빛이 스며들어 온다. 우리 일상생활의 계산과 하나님 나라의 계산이 전혀 다르다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 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 잃은 양을 찾아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잃은 양을 찾았다고 잔치를 벌인다. 양 한 마리 값보다도 더 큰 엄청난 돈을 낭비하면서 잔치를 한다. 세상의 지식과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즉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상식적인 행동의 이야기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이런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천국의 비밀을 조금씩 감지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아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하루속히 유교적 관념의 생활습관을 버리고 일상생활을 복음화 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날 수 있고 자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생활문화를 복음화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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