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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 | 칼빈 선생이 웃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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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태화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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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추태화 교수 칼빈 선생은 기독교 역사에서뿐 아니라 세계문화사, 정치사, 경제사에 큰 업적을 끼쳤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무슨 야망이 있어서 그런 업적을 남겼다는 데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이 하라는 대로 행동했던 결과였다. 후대는 그를 종교개혁가의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따르고 있다.

우리에게 남겨진 칼빈의 초상화를 보면 특이하다. 얼굴은 뺨이 들어갈 정도로 야위었다. 턱은 비정상으로 보일 정도로 뾰족하고 눈은 움푹 들어갔다. 칼빈은 살아있는 동안 내내 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육체적 연약함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병에 지지 않았다. 바울 사도처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고 감사함으로 이겨냈다. 장로교회가 탄생한 것은 칼빈의 그런 순종에 있었다.

올해 2009년은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는다. 여기저기서 기념식이다 기념세미나다 바쁘게 그를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는 칼빈 기념동상제막식도 있었다고 한다. 칼빈은 신앙의 후배들이 그를 숭배할까봐 염려했다. 호화로운 묘도 세우지 못하게 했다. 유언에 따라 그의 묘는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단순하다.

그 후 칼빈의 후예들은 그의 염려에 반하여 칼빈주의를 세웠다. 한국에 와서 칼빈의 장로교회는 백 개가 넘는 군소교단으로 쪼개졌다. 어느 장로교계통의 대학은 총장을 선출하지 못하고, 어느 대학은 총장과 교수, 학생이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쳤지 무술을 가르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장로교계통의 교회가, 신학교가 춤추고 있다. 칼빈이 추구한 것은 제네바 교회와 시민의 정의로운 삶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코람 데오(Coram Deo)의 삶이었다.

칼빈 선생이 지금의 한국장로교회를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서슬 퍼렇게 야단이라도 치실까, 아니면 너무 기막히셔서 웃으실까. 존경받는 종교개혁가의 탄생을 두고 그를 철저하게 따르지는 못해도 욕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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