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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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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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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일반적으로 사람의 참 모습은 극한 상황이 되어 봐야만 안다고 한다. 평안할 때나 순탄할 때, 형통할 때나 성공할 때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진실이 극한 상황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말씀이지만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표현대로 ‘숨겨진 말씀’(hidden word)으로 묻혀 계시던 예수님도 가르치기를 시작하면서 모습을 드러내고, 각종 병자들을 고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며 섬기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지만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주님 되심을 드러낸 것은 십자가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요구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요한은 이제 총독의 관정(官廷) 안에서는 야만적인 고문과 불법이 자행되고, 밖에서는 피에 굶주린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Crucify! Crucify!)고 외치는 상황으로 기록한다. 그런데 요한은 그 가운데서도 권력을 대표하는 총독은 들락거리며 우유부단과 유약함을 드러낸 것에 초점을 맞췄다.

주경학자 모리스는 유월절 특별 사면이라는 관례에 따른 석방 선고에 실패한 빌라도가 또 하나의 다른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황제의 월계수 대신 가시 면류관을 머리에 씌우고 황제의 자주 옷 대신 장교의 자색 외투(홍포)를 입혀 군인들이 앞에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며 손으로 때리게 한 것(NEB는 ‘거듭해서’로 번역)이 단순 학대나 조롱, 군중 앞에서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려는 것보다 유대인들의 동정심을 발동하게 하려는 조치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렌스키(Lenski)도 같은 의견이다.

뼈나 쇳조각이 박힌 여러 가닥의 끈으로 만든 당시 채찍은 등허리를 헝겊 조각처럼 만들 수 있는 끔찍한 심문 수단으로 주로 외국인이나 노예들에게 자백을 받아낼 때나 쓰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만일 군중의 동정에 호소하려는 의도였다면 그것은 빌라도의 심각한 오산이었고, 오히려 군인들의 희롱과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는 고함소리를 유도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모리스는 빌라도가 석방 선고를 할 수 없는 가시적 효과로 폭행당하는 조소 대상, 무력한 자로 예수님을 부각시켜 왕이 될 자격이 없음을 보여주려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했다.

물론 빌라도가 유대인들이 십자가 처형 대신 태형을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했을 수는 있다. 예수님을 그들에게 데리고 나와서(4절) 심문 결과 아무 잘못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이 사람을 보라’(Behold, the man!)고 한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사람, 어디 이런 사람이 있냐는 말일 수도 있지만 타스커(Tasker)는 “이 불쌍한 몰골을 보라. 이렇게 초라한 인물을 정말 황제에게 맞서는 왕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일종의 퍼포먼스 인상을 준다고 했다.

대제사장들과 하인들은 즉각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이라”(레24:16)는 율법을 근거로 신성모독죄를 제시하며 사형을 요구했다. 월권(越權)이다. 그러나 빌라도는 다시 딜레마에 빠졌고, 비겁한 재판관이 되고 만다. 죄를 찾지 못했다면 피고인을 석방하면 그만인데… 결국 빌라도의 오판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는 소리치기와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는 무책임한 판결로 이어졌을 뿐이다.

‘이 사람을 보라’, 빌라도는 “여기 고발당한 자가 있다”며 군중의 심리를 유도하는 의미로 말했지만 요한은 “Jesus is THE man”으로 생각하며 이 중대한 시점에 최고 권력자가 이 진상을 표현했다는 데 뜻을 둔 것 같다. 요한은 마치 인자(the Son of man)을 암시한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저 침묵(沈黙)하는 예수님이시다. 채찍질과 수욕을 당하는 모순투성이 재판인데… 아마 이 침묵이 담고 있는 언어는 상당할 것이다. 이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두고두고 들어야 할 가장 소중한 말씀이 담긴 침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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