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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nd sin no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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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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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26

 

Go, and sin no more!

요7:53-8:11

 

본문은 레온 모리스(Leon Morris)가 교회사 전체를 통해 신빙성 있는 사건으로 인정되어 왔다고는 했지만 초기 헬라어 사본들 중 한 곳에만 들어있을 뿐 다른 데에는 빠져 있고, 후기 사본들에도 각각 위치를 달리하여 나타난다. 다수의 학자들은 문체나 내용이 요한복음서에는 부합하지 않고 문맥도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며 요한복음보다는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어조나 행동에 더 잘 부합한다고 한다. 내용상 7장 52절과 8장 12절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주는 사건으로 볼 수도 있고, 오래된 전승이나 괄호로 묶을 수도 있다.

초막절은 끝났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한 눈에 보이며 성경에 당신의 기도장소로 자주 언급된 감람산으로 나가셨던 예수님은 또 다시 성전에 앉아 백성들을 가르치셨다. 이 소문은 급속히 퍼져 나갔고, 그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왔다. 물론 교화가 목적이 아니었다.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그들을 ‘죄인을 물어뜯도록 훈련된 도덕 감시견’ 같다고 표현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5절) 그들에게는 전혀 배우고 순종할 마음이 없다. 요한은 그들이 ‘예수를 시험한 것’이라고 했다(6절). 로마법과 율법 사이에서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만들려고 함정을 팠다는 말이다. 모세의 율법에 ‘반드시 죽이라’(레20:10, 신22:22-24)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그 동안 ‘사랑’을 가르쳤고, ’죄인들의 친구‘였기에 빠져 나가기 힘든 함정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만일 ’용서해야 한다‘고 하면 율법을 깨뜨린 혐의로 잡히고, 로마법을 인정하는 매국노가 된다. 반대로 ’돌로 치라‘ 하면 그 동안 가르쳤던 ‘사랑’에 위배되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진다. 유대인들에게 사형권을 주지 않은 로마 정부에 의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예수님을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뜨리려는 고단수의 시험이었다.

그런데 여기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은 있지만 남자가 없다. 만일 남자가 도망치도록 방치했다면 이 사건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애초부터 기획된 사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이 여인을 이용해 예수님을 고소할 목적으로 음모를 꾸민 셈이다.

예수께는 위기였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 예수님은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신다. 땅에다 뭔가를 쓰기 시작하셨다.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절)고 말씀 하시고 또다시 무슨 글을 쓰실 때 살기등등하던 사람들이 어른부터 꽁무니를 빼고 슬그머니 죄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정죄당하고 있는 여인보다 오히려 정죄하고 있는 그 교만한 자들을 공격하신 셈이다. 요한은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살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때문에 졸지에 죄인, 곧 어둠의 사람들이 되었음을 부각시켰다.

이제 자기 죄를 알고 수치심과 공포심으로 꼼짝을 못하고 떨고 있는 여인만 남았다. 예수님은 어둠에 갇힌 이 여인에게 다가가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용서를 선언하셨다. 마태복음 5:27-32과는 너무 다른 파격적인 은혜다. 그리고 용서와 더불어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Go, and sin no more)고 하셨다. 거룩한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노출된 죄인(간음한 여인)이든 군중 속에 숨어 있는 죄인(양심의 가책을 받고 도망간 사람들)이든, 아니면 가면 쓴 죄인(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든 우리는 누구나 세 가지 유형 중에 속하는 죄인,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Go, and sin no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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