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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의 불신과 초막절 예루살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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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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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22

 

형제들의 불신과 초막절 예루살렘 방문

요7:1-13

 

오병이어의 기적 후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지만 반대세력도 날로 증대했다. 요한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는 말로 시작한 7장부터 예수님의 사역 중에 매사에 반대와 저항이 있었던 것을 거론하며, 반대자나 적대자들의 모든 이론이나 주장에 ‘예수님은 메시아’라는 논점에서 충분한 답변이 주어졌다고 변증한다. 칼리 H. 도드(Carley H. Dodd) 교수는 요한복음 7장과 8장을 가장 격렬한 논쟁의 불꽃이 튀는 곳이라 했다. 요한이 적수들과의 격론을 정공으로 내세우는 예수님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요한은 절기를 들어 시간을 점찍는 방법으로 복음서를 기록했다. 그래서 6장까지가 유월절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7장부터 9장까지는 초막절이 배경이 되었다. 초막절(장막절, 수장절, 추수감사절)은 유월절(무교절), 나팔절, 수전절, 부림절과 함께 유대인의 대표적인 명절이었고, 유월절, 칠칠절(오순절, 초실절, 맥추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였으며 가장 크고 중요한 절기이자 마지막 절기였다. 시월 초쯤에 지킨 이 절기는 광야에서 40년간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밤낮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고, 만나를 내려 배를 채워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메시아 왕국을 소망하는 기쁨의 명절이다.

이 절기 때에는 예루살렘 근교 약 30㎞ 이내에 살던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참석했고, 광야생활을 기억하도록 7일 동안 집밖에 초막을 짓고 거기서 지내며, 밤이면 불기둥으로 인도받은 것을 기억하도록 성전 주위를 초로 불 밝히고, 제사장들은 반석에서 물 내신 기적을 기억하도록 실로암의 물을 가져다가 붓는 의식을 행했다.

강해설교의 대가인 워런 W. 위어스비는 7장의 내용을 ‘절기 전’(1-10절), ‘절기 중’(11-36절), ‘절기 끝’(37-52절) 이렇게 세 시기로 구분하며 이 세 기간에 일어났던 반응을 절기 전에는 ‘불신앙’(형제들의 불신앙), 절기 중에는 ‘논쟁’(유대지도자들과 백성들,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예수님의 인격을 둘러싼 논쟁과 가르침에 대한 논쟁), 그리고 절기 끝에는 ‘분열’(예수님을 두둔하는 사람들과 잡아 죽이려는 사람들)이라는 세 단어로 설명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 자기를 대적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대체로 안전한 곳인 갈릴리에 머물며 사역하셨다. 그런데 초막절이 가까워지자 형제들(의붓형제인 셈)이 나아와 “유대로 떠나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라”(3-4절)고 할 때는 “때가 차지 못했다. 아직 올라가지 않겠다”(8절)며 세상의 미움 때문에 절기 참여 시기에 대해 신중하셨던 예수님은 형제들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간 후, 절기 중간에 은밀히 가셨던 것 같다(10절). 여기서 ‘나타내소서’라는 공손한 표현은 사실 “형님이 만약 진짜 메시아라면 갈릴리 촌구석에서 잘난 척하지 말고 예루살렘 같은 대도시에 가서 정계에 입문해 보시지요” 그런 말로 봐야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전도하기 힘들다고 했던가. 그들은 예수님과 가까이 살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기적 행하는 것 정도는 인정했지만 어느 날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장남이 망치와 대패는 팽개치고 날마다 사역한답시고 집밖으로 나도는 형에 대한 불만과 피해의식으로 가득했다. 아마 돌아와 장남역할을 하도록 데리러갔다가 지쳐서, 너무 속상해서 했던 말로 보인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님을 “미쳤다”(막3:21)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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