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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사역의 본질(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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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언어(2)

성령사역의 본질(29)

 

배 본 철(성결대학교 교수, 성령의 삶 코스 대표)

(302호와 연결)

저자 김 감독은 처음 방언을 하게 될 때는 적어도 30분에서 1시간 정도 계속 하는 것이 좋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상처나 나쁜 정보 등을 보링(boring)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소한 30분 이상 기도할 때, 받은 방언이 흐지부지 안 되고 깊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109-10). 그러므로 방언의 유익을 참으로 경험해보려면 누구나 방언을 30분에서 한 시간 이상 해 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141).

또 성령께서 자연스럽게 들려주시는 방언의 음절을 소리 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방언 통역, 예언 등의 은사로 들어가게 된다고 했습니다(119-20). 그리고 더 나아가 진정 영적인 깊은 체험과 영적 전쟁, 음부를 대적함, 하나님과의 친밀한 임재 가운데 들어가려면 방언은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기초라고 저자는 강조했습니다(238).

이것은 저자의 경험에 근거한 사실을 설명한 것으로서, 흔히 ‘은사는 받은 자만이 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일반 과학으로서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영적인 세계를 설명한 것이니, 합리적으로 이를 이해하려는 데는 한계가 있음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보겠습니다.

단지 방언의 체험만이 아니라 이에 따라 질병의 치유, 문제 해결, 은사 체험, 귀신이 떠나감 등 많은 영적 제약들로부터 벗어났다고 합니다(91). 이는 방언이 단지 개인적인 덕을 세우는 차원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유익성을 보여준 설득력 있는 실례라고 봅니다. 그리고 주님을 닮기 원함과 그분 나라의 확장을 위한 동기를 가져야 올바른 방언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점은 복음적 깊이가 있는 설명이라고 봅니다(168).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름대로 방언에 대해 앞으로 좀 더 숙고할 만한 몇 가지 주제들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첫째, 최근 방언운동에 왜 평신도들이 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을까요? 지난날 한국교회에 신학자,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방언운동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들은 신학적, 교리적으로 큰 장벽들을 만나 거의 좌절되었고, 그 결과 한국교회 내에는 방언에 대한 부정적 정서와 신학적 비판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방언을 지지하다보면 주위에서 ‘도대체 어느 신학교 출신이냐?’, ‘저 사람 교단에서 방언을 인정하는가?’, ‘우리 교단 교리에는 어긋난다’ 등의 비판 속에 매장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라면 신학적으로 크게 제어 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어디든지 또 언제든지 거침없이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1970-80년대에는 믿는 자들이 제 이차적 성령세례의 증거로서 받는 방언을 강조하는 서적들이 국내에 유행했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누구나 방언을 말할 수 있다고 말하는 『하늘의 언어』는 신학적으로 볼 때는 ‘제 3의 물결’의 성령론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은사운동은 거의 언제나 사단의 집중적인 궤계와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이 운동을 지혜롭게 표현하고 또 건실하게 성숙시켜 나가려면, 이 노선을 변증하기 위해 그동안 일구어 놓은 ‘제 3의 물결’의 신학적 지혜들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한 때를 풍미했던 일시적인 운동으로 그치지 않고, 후대에까지 건실하게 지속될 수 있는 학문적, 복음적 바탕을 견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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