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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샤라 전도 / 행 2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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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샤라 전도 / 행 21:7-16

 

바울의 예루살렘 귀환 여정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중에도 각 곳에 세워진 교회들을 소소하게 챙기는 일을 다 감당하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바울의 전도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고, 수많은 자신들이 믿는 종교에서 개종하였고, 믿지 않던 사람들은 바울의 복음 전도를 듣고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긴 여행의 시간에 힘들고 지칠 법도 한데 바울은 어느 한 쪽에도 소홀함이 없이 지친 내색하나 하지 않고 잘 감당하였습니다.

 

돌레마이이 도착한 바울의 일행

본문 7절에 보면“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일행은 두로에서 출발해서 바닷길을 건너서 돌레마이에 도착해서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육로로 걸어서 도착한 가이샤라

본문 8-9절을 보면“이튿날 떠나 가이샤라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그에게 딸이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이 가이샤라를 두 번 방문하였고 세 번째 방문하는 것입니다(행9:30, 18:22).

 

가이샤라에서의 아가보의 예언

바울은 가이사랴에 도착한 후 여러 날 동안 빌립의 집에 머무르면서 성도들과 교제하며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때 유대로부터 내려온 선지자 아가보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당하게 될 고난을 예언하였습니다.

본문 10-11절을 보면“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취하여서 자기의 발에 매면서 예루살렘에 가면 바울이 이같이 매임을 당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 자신은 알고 있었습니다(행20:23).

본문 12절을 보면“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아가보의 예언을 듣게 된 가이샤라의 믿음의 사람들은 염려와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하였습니다.

 

바울의 끊임없는 사명의 길

본문 13-16절을 보면 “바울이 대답하여 여러분이 어찌 하여 울며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 때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이 여러 발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가이샤라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바울을 권면하였지만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상반되는 행동이라고 오히려 꾸짖으며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바울은 도리어 가이샤라의 고난을 두려워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너희가 어찌하여…하느냐’면서 고난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가질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바울은 갇혀 있는 순간에도 성도를 위로하는 것을 쉬지 않았고(고후1:6, 엡3:13), 매임을 인하여 복음이 드러나게 되었다고 오히려 자랑하기까지 하였습니다(빌1:12, 딤후2:9). 핍박과 고난이 많았던 초대 교회는 바울의 이러한 체험적이고 모범적인 가르침을 받았기에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았음에도 쓰러지지 않았고 능히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이샤라의 믿음의 사람들은 바울의 행동을 보고서는 더 이상 권면을 하지 않았고“주의 뜻 때로 이루어지이다.”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주를 위한 바울의 각오는 다메섹 도상에서의 변화 이후 그의 전 삶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 증거의 목적이 아니면 자신의 생명조차 죽은 것으로 여겼고, 단지 복음에 합당한 도구로서만 살았던 것입니다(행20:24, 갈2:20).

오늘날의 고난은 초대 교회가 당했던 것처럼 외부적이고 강제적인 탄압은 아닙니다. 쾌락이나 영적인 교만의 풍조,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가운데서 다가오는 내적인 고난입니다. 그러나 바른 성도는 바울과 같이 이러한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의 등대로 서서 빛을 드러내며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신용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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