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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변론 / 행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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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변론 / 행 22:1-9

 

유대인들의 중상모략과 거짓으로 인한 박해로 죽을 뻔한 자리에서 로마군의 천부장의 손에 의해서 간신히 구원을 받아 로마군의 영내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을 왜 괴롭히는 것인지에 대한 천부장의 질문에 대하여 바울을 괴롭히는 유대인들이 올바른 대답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매 맞음을 당하여 쓰러질 정도로 기운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영내로 들어가기 전 군인들의 도움으로 기운을 차리고 천부장에게 자신에게 변명할 기회를 달라고 헬라말로 부탁하고 허락을 받고는 분 냄이 없이 바울은 예루살렘 거민들을 상대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내력과 복음의 전도자가 된 경위를 히브리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유대인임을 주장하였습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부형들이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그들이 그가 히브리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 문화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말을 듣는 유대인들은 그렇게 흥분했던 시간과는 다르게 즉시로 조용해 졌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더욱 자신에 대하여 어떤 유대인보다도 하나님에 대하여 더 열심을 가지고 섬기었던 자신이었다고 변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4-5절에서 바울은 더 자세히 얼마나 자신이 유대교의 신봉자였으며 얼마나 율법에 대하여 열심 있었던 사람이었는지를 강하게 변명하고 있습니다.“내가 이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라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와 같은 과거를 간증한 이유는 자신을 핍박하는 유대교도들도 회개만 하면 얼마든지 주님께로 돌아 올 수가 있다는 희망을 줌과(딤전1:13-16), 동시에 지금 결박을 당하여 끌려가는 신세라고 해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없어야 함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오늘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하고 그 상황에서라도 그 환경이나 상황에 구애 받지 말고 자신이 할 수 만 있으면 오직 예수를 증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6-9절을 보면“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공문을 받아서 기독교인들을 잡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을 받게 하려고 다메섹에 이르렀을 때에 시간이 오정이어서 햇빛이 강렬하였지만 그보다 더 강하고 환한 빛이 비추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표현하기를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빛으로 말미암아 눈이 멀게 되어서 3일 동안을 보지 못했다고 다른 구절에서는 증거 되고 있습니다(행9:9). 이같이 말하는 이유는 바울은 자신의 개종이 자신의 지식과 지혜로 된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으로 인해 되어 진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당파나 이단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탄생 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하던 바울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울의 이름도 알고 사울이 지금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알고 계시며 사울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도 알고 사울의 모든 것을 뿌리까지 알고 계십니다. 주님을 대적하는 사울을 찾아오셔서 사울아, 사울아 하고 사울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주님은 사울의 이름을 부르듯이 우리들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신용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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