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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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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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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긴긴 겨울이 물러가는 자리에 봄이 찾아든다. 그날 오면 바람이 실어오는 봄이 먼저 전해진다. 흙 내음이다. 어떤 향기보다 생명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인공으로 만들지 못하는 독특한 향기다. 긴 잠에 빠졌던 대지를 깨우는 향기고, 온갖 살아있는 생명체들에게 봄을 깨우는 향기다. 곳에 따라서는 조금씩 다른 냄새지만 봄날에 전해지는 흙 내음은 생명을 깨운다. 비록 퀴퀴한 냄새일지라도 생명을 느끼게 한다.

이어서 불어오는 바람은 봄의 향기를 가득 싣고 온다. 화신(花信)과 함께 불어오는 바람은 향기를 담고 있다. 그 향기는 누구랄 것 없이 마음과 옷을 여유롭게 한다. 기기의 발전과 함께 SNS를 통해서 화신이 동시에 전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중부지방에는 아직 멀었지만 남녘에서는 벌써 핀 꽃들이 사진으로 전해진다. 어쩌면 어느 봄날 문득 찾아온 꽃 손님을 맞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만큼 개화기보다 화신이 훨씬 빠르게 전해진다.

핸드폰에 부착된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져서 카메라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게 된 덕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진 찍는 실력들이 보통이 아니다. 그러니 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것을 통해서 봄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봄날을 느끼기 위해서는 장애물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기다림의 신선함이 없어지니 감격이 반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말이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봄날을 맞을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것이다. 일에 매이거나 환경이 만들어주는 분주함 때문에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봄이 느껴질 때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현재의 시점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는 그런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으니 더 무뎌지는 것은 아닐지. 오늘도 불어오는 바람은 봄이라 한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하다. 그저 하루의 일에 충실하려고 하는 것이 전부다. 어쩌다 세월의 지남이 느껴지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차라리 민감함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사는 만큼 비례해서 삭막한 삶이 그로 하여금 점점 무감각해지게 하는 결과에 이르게 할지 모른다. 그러한 의미에서 SNS의 기능은 나름 역할을 하고 있는 면도 없지 않다. 일부러 야외에 나가서 몸으로 느끼지 못하지만 무감각해진 의식을 깨워 봄이 오고 있는 소식에 관심을 갖게 하니 말이다.

올해도 봄을 맞을 수 있는 준비도 못한 채 어느 덧 봄이 와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당장의 일정에 매어 눈을 들어 먼 산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봄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자신이다. 분명 바람이 전해주는 봄이 왔으련만 굳게 닫힌 자동차 문에 갇혀서 봄이 멀다고 고집하고 있다.

어느 날이다. 식탁에 올라온 냉이무침이 봄을 전해준다. 봄맞이를 위해서 나가지 못했고, 분주한 날들이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식탁에 오른 냉이가 무뎌진 마음을 깨워준다. 풋풋한 냉이 특유의 향이 겨우내 무뎌진 오감을 깨워준다. 냉이무침 한 접시가 전해주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냉이를 캐기 위해서 들로 나가는 수고는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캐다가 팔았을 것이니, 그의 수고 덕에 집에 앉아서 봄을 느끼게 해주었으니 고마운 마음이다.

올해도 제대로 봄맞이를 하지 못했다. 며칠사이에 바람이 전해주는 느낌은 분명히 달라졌지만 정작 수줍게 내민 봄의 전령들을 만나러 야외로 나갈 생각조차 못한 채 봄이 깊었으니 말이다. 그런 중에 식탁에서 전해주는 봄소식에 잠시 모든 것을 정지해야 했다. 어디 봄소식만 전해주는가? 냉이 한 접시가 전해주는 것은 미각을 깨우고, 계절을 느끼게 하는 것은 필연이다. 실속도 있다. 자연식물이 채워주는 비타민은 어느 유명회사 제품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것이다. 굳이 비타민제를 별도로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 겨우내 추위와 싸우며 견뎌냈으니 축척된 각종 영양소는 탁월하다. 게다가 식이섬유까지도 풍부하니 종합적인 영양제 아닌가.

손이 냉이무침이 담긴 접시로만 간다. 아마 많이 그리웠던 게다. 표현은 안했지만 봄을 많이 탔던 것일지 모른다. 냉이 한 접시가 전해주는 것으로 봄맞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때를 따라 섭리하시는 분의 은혜인 것도 감사를 더한다. 싱그러움과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냉이 한 접시에 담긴 은혜를 식탁에서 나눌 수 있음도 감사한 일 아닌가. SNS로 전해지는 소식이 못 전해주는 생명력까지 전해주는 냉이 한 접시에 봄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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