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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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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의 성경 속 세상

청교도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북해를 바라보고 있는 언덕, 이곳을 찾아오기 위해서 비행기만 14시간이나 타야 했다. 늦은 밤 호텔에 겨우 짐을 풀었다. 시차가 지배하는 몸은 이내 잠이 들었지만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얼마 안 있어 일어나야만 했다. 더 이상 잠을 지속할 수 없게 하는 신체의 리듬 때문이다.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일찍 길을 나섰다. 일행들 모두가 같은 몸 상태인 것은 표정을 보아 알 수 있었다.

일행을 싣고 가는 운전기사의 표정은 포커페이스다. 그저 일상에서 하는 일이니 달리 생각하는 것도 없이 자신의 일에 충실한(?) 모습인 것 같다. 낯선 이방인, 그것도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찾아간 사람들이 찾는 곳이 공동묘지니 의아해 할 것도 같지만 그에게는 그저 일상의 일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 자신의 일만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직업이니 누가 찾는 것과는 관계없이 궁금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의례적인 인사와 함께 다음 만날 장소를 약속하고는 이내 뒷모습을 감추었다.

버스를 뒤로하고 우리 일행은 공동묘지로 찾아들었다. 서양의 공동묘지가 그렇듯 흉흉한 분위기가 아니다. 이제는 도심에 위치하게 된 공동묘지는 도시인들의 쉼을 누릴 수 있게 하는 훌륭한 공원과 같았다. 오래된 비석들이 있을 뿐 고목들과 잘 가꾼 잔디와 풀꽃들이 빈틈없이 피어있는 묘원은 도심의 쉼터가 되어있었다. 저마다 다른 모습이다. 묘원에 있는 사람들은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 책을 읽고 있는 사람, 그런가 하면 앉아서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사람, 가로누운 채로 이야기 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모습이 묘원의 풍경을 그려주고 있다.

그러나 그곳은 종교개혁 이후인 17세기의 소위 ‘청교도’라고 일컬어지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있는 곳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해야만 했는지 기록도, 정확한 통계도 없으니 알 수 없다. 실제로 묘원에 세워진 비석은 지극히 일부의 사람들일 뿐이다. 겹겹이 포개어 매립했다는 표현이 더 합당할 것 같다. 각각의 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처형되는 사람들이 많으니 굳이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나 계획은 없었으리라. 그저 주검을 묻고 또 묻어서 몇 층으로 묻어버렸다. 그렇게 죽어야 했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지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이제 그 주검들의 백골조차 남겨지지 않았으리라.

그들은 왜 이렇게 이곳에 함께 잠들어있는가? 오랜 기간을 두고 형성된 묘원이 아니라 청교도라는 이유로 처형된 사람들을 갖다가 묻은 곳이다. 도심 외곽에 한적하면서도 자신들의 악행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지기 원치 않는 사람들이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처형한 주검을 가져다 묻은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가 확장되면서 도심에 자리한 공원이 되어 산 자들을 위한 쉼터가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 잠들어 있는 이들은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그들이 얻고자 했던 복음신앙 때문에 죽어야 했고, 이곳에 묻혀야 했다. 결코 죽을만한 짓을 하지 않았는데 복음신앙을 통해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을 뿐인데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죽음이었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이런가. 그렇다고 누구 하나 그들의 죽음이 거룩한 것이었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

이곳에 잠들어있는 사람들은 모두 신앙의 다름 때문에 국교인 성공회에 대항하다가 죽음을 당한 이들이다. 그들이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신앙이었건만, 그리고 성경의 깨달음을 기뻐하는 것이었건만 군주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려는 자들에 의해서 단두대에서 사라진 영혼들이다. 왕권을 유지하고, 왕의 개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로마교회로부터 영국교회를 독립시켜서 교회에 대한 통치권을 왕이 갖는다는 국교회주의(Anglicanism)를 주장하게 되었는데 당시 잉글랜드와 스코트랜드의 교회들은 이에 대해 저항을 했던 것이다. 청교도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반국교회주의자(反國敎會主義者)들을 지칭하는 의미다. 따라서 여기에 잠든 사람들은 영국의 종교개혁과정에서 국교회주의에 저항하던 사람들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이처럼 종교가 정치적,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될 때 그 목적인 아무리 선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종교의 순수성과 진정한 가치를 담아낼 수 없으며, 나아가 종교도 철저하게 정치적,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로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하다. 역사가 남긴 교훈은 산자들, 그리고 그 신앙을 계승하는 자들에 의해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 살아있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도 느끼게 한다.

그들이 잠들어 있는 곳에서 그들의 몸부림을 설명하면서 생각한다. 그렇게 지켜야 했던 신앙인데, 그리고 그 신앙을 계승하는 사람이라고 자인하는데 정작 우리는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그저 현실에 만족하면서 적당히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생각도 목적도 없는 자의 모습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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