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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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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의 성경 속 세상

옥수수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싹을 내고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인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지난 봄날 옥수수 씨앗을 심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옥상이라고 하는 제한된 환경에서 과연 제대로 자랄 것인가? 꽃은 필지? 열매까지 기대한다면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씨앗을 심고 며칠이 지나면서 살아있는 생명임을 증명하듯이 싹이 나서 자라기 시작했다. 옥수수의 큰 키가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주게 될 즈음 씨앗을 심을 때 염려했던 것들은 모두 떨쳐버려야 했다. 하루가 다르게 훤칠하게 자라는 녀석들을 보면서 열매가 익을 날을 기다렸다.

얼마가 지났을까, 날씨가 더워지는 어느 날, 옥수수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기대했던 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옥수수자루가 불쑥 커지더니 겉으로만 봐도 알맹이가 여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통통해졌다. 그리고 얼마가 더 지났다. 옥수수수염이 제법 말라붙은 것이 알맹이가 익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익은 것만을 골라서 꽤 여러 자루의 옥수수를 딸 수 있었다. 심을 때는 옥상텃밭의 토심(土深)이 얕아서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으면서도 수확할 때의 마음은 일반 농부들과 다르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반신반의하면서 심었지만 그곳에서 충실하게 자랐고 열매까지 맺었다. 하지만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몇 년째 가뭄이 계속되었다. 그 중에도 금년 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토심까지 얕으니 하루만 물을 주지 않으면 옥상의 식물들이 자랄 수 없다. 매일 저녁 녀석의 상태를 살펴야 했다. 덕분에 거의 매일 옥상텃밭에 물을 줘야 하는 수고와 함께 심어놓은 것들 이것저것을 살펴야 했다. 반면 다행히 일조량은 좋았다. 가장 양지바른 곳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볕이 잘 드는 곳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뜨겁게 태양이 쪼이는 곳이 아닐지 걱정을 해야 하는 곳이다.

모든 식물이 그렇듯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싹을 내는 과정은 몸살을 알아야 한다. 씨눈이 터서 자라기 위해서는 씨앗에 저장된 영양분이 분해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야 하고, 그 과정에 적당한 습도와 온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싹이 흙을 뚫고 나오면 그때부터는 절대적으로 햇볕이 필요하다. 태양이 없이는 건강한 식물로 자랄 수 없다. 매순간 태양의 고마움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열매를 수확할 때까지 계속이다. 몇 포기되지 않지만 한 줄로 심으면서 몇 포기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심었다. 그것은 잣나무 밑쪽에 위치한 녀석들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생각을 저버리지 않게 했다. 싹이 날 때부터 자라는 속도가 느리더니 결국 제대로 자라지도,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비실거리고 있다.

사람이 아무리 관리를 잘 해도 대신 할 수 없는 것은 태양이다. 인공적으로 햇볕을 만들어서 식물을 자라게 하는 것은 제한적인 공간이라면 전기라도 이용해서 가능하겠지만 들판에서 자라는 식물을 위해서 그러한 시설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든 나머지 옥수수는 잘 자라서 각각의 몫을 감당해주었다. 저마다 열매를 맺었고, 익혔다. 그리고 모두가 맛을 볼 수 있을 만큼 수확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햇볕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하는 옥수수 수확이었다.

홍천은 우리나라의 옥수수 주산지다. 홍천에 들어서면 온통 옥수수 밭이다. 다른 작물은 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일만큼 산자락마다 옥수수 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실하게 자란 옥수숫대를 보면 아름답기까지 하다. 부는 바람에 넘실대는 옥수숫대의 일렁임이 만들어주는 정경도 아름답다. 잠시 바라보면서 한 포기씩 보듬으면서 살폈을 농부의 손길을 생각한다. 넓은 산자락을 오가면서 자식을 키우듯 보살폈을 농부들의 모습이 아른 거린다. 가뭄에도 잘 자라준 것 같아서 좋다. 비록 내 것은 아닐지라도 넘실거리는 옥수수 밭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다.

지금은 간식거리로 옥수수를 먹지만 먹을거리가 절대 부족했던 시대는 주식이었다. 그만큼 강원도에서는 옥수수가 중요한 작물이다. 요즘은 종자개량을 통해서 잘 자라면서도 열매가 실하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서 수확량도 많아졌다. 하지만 옥수수가 주식이었던 시대는 그마저 녹록하지 못했기에 옥수수(강냉이쌀)도 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옥수수 농사는 쌀을 대신하는 것인 만큼 주식을 위한 것이기에 중요했다. 하지만 요즘은 거의 간식거리로 재배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지역 농민들의 주요 수입원이다. 일시에 목돈을 만들 수 있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마침 일이 있어서 홍천에 간 김에 농협직판장을 찾았다. 방금 따온 옥수수 한 접을 트렁크에 실었다. 가격은 집 근처 마트에서 파는 것이 더 쌌지만 농민들의 땀을 생각해서 구입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맛있는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운전을 했다. 옥상에서 기른 옥수수와 홍천에서 사온 옥수수를 함께 삶아서 여럿이 나눠먹었다. 홍천에서 사온 옥수수는 매년 먹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옥상에서 기른 옥수수는 처음이다.

몇 백 원만 주면 한 자루의 옥수수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옥상에서 기른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씨앗을 심어서 열매를 거두기까지 녀석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소독도 하지 않고 기른 것이기에 더 귀하다. 옥수수를 삶아서 지체들과 함께 나누면서 많은 것을 깨닫는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특별히 금년엔 옥수수를 가꾸는 수고와 함께 허락하신 섭리의 은혜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어 더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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