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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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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33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요9:24-34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라는 일본 작가가 저자 자신의 자전적 소설, 『상실의 시대』라는 장편소설을 썼다. 혼자라는 고독 속에서 꿈과 사랑, 그리고 정든 사람들을 잃어가는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세상 모든 청춘을 위해 쓴 소설이다. 일본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은 이 작가를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문학가라고 했다. ‘와타나베’라는 한 남자가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날에 겪은 감미롭고 황홀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것인데 요한복음 본문의 맹인이었던 주인공도 부모마저 마음으로 ‘예수는 그리스도’임을 알고도 신앙고백을 회피하고 자신들의 살 길을 찾는 모습을 보며 정말 상실의 시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그 절박한 기로(岐路)에서 애절하지만 당당하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

그 역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는 것에는 출교라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과 출교가 공동체에서의 고립으로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은 물론 구원가능성에서의 배제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입술에 발린 말로 시인하는 정도로 그칠 수는 없었다. 바리새인들이 지위를 이용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증언 회유를 시도했지만 “내가 맹인이었다가 지금 본다”며 “창세 이후…전무후무한 일을 행하셨으니 그 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아니냐?”(32-33절)라고 마치 이사야29:18과 35:5-6절 말씀을 아는 듯 대답한다. 그는 지금 출교까지도 감수하는, 즉 생명을 건 고백을 하며 오히려 구원의 길을 걷고 있다.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는 그는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준 좋은 예(例)가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시인한다는 것은 곧 삶과 죽음의 결단이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평소 인사가 “시이저(Caesar)가 우리의 주(主)”였을 정도로 로마 황제가 신격화 된 때였기에 ‘예수가 주’라고 공개적으로 증언한다면 이는 로마에 대한 반역이요 시이저에 대한 모독으로 사형에 해당되는 죄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고 가르치셨고, 바울 사도도 로마서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롬10:9)고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의 의미를 확실히 정리했기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걸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다.

“내 눈을 뜨게 한 분인데 그가 어디서 왔는지 왜 모르냐?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라”(30, 33), 맹인이자 무식한 걸인이었던 이 사람의 단순하면서도 반박할 수 없는 이 논리로 인해 궁지에 몰린 전문가, 바리새인들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난 네가 우리를 가르치느냐”라며 결국 그를 정죄하고 쫓아냈다(34절). 출교시켰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자기들의 통념에 따른 법적 조치로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지도자 행세를 하기는 했어도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진리를 거절한 것, 스스로 눈 먼 소경임을 드러낸 꼴이 되었다. 그들은 보지도 않고, 알지도 않으면서 예수님의 적대자가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90년경에도 ‘오직 진리’보다는 회당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워하여 양다리 걸치고 신앙생활 하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오늘날 세상에서 고립될까봐 적당히 타협하며 신앙 생활하는 이 시대 성도들에게 도전과 경고를 주기 위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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