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목회

목회영성이야기 분류

나는 양의 문이라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35

 

나는 양의 문이라

요10:1-10

 

일부 학자는 9장의 결론과 10장의 서두가 서로 연관이 없는 것 같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으나 요한복음 10장은 9장에 대한 주석이다. 왜냐하면 10장이 유대인들의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 선고로 끝난 9장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점은 양과 양의 우리, 그리고 목자의 모습에 맞추어져 있다. 요한은 구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인 하나님을 목자로, 백성들을 양으로 비유하며 구약의 언약 신학의 그림을 통해 목가적(牧歌的)이고 동양적인 모습으로 예수님의 구원자 되심을 설명하고 있다.

요한이 기록한 예수님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마지막 설교인 이 10장은 비유로 시작(1-5절)해서 그 비유를 두 가지로 적용하는 형태로 기록됐다(7-10절, 11-18절). J.R.힐(Hill)은 “6절에 쓰인 ‘비유’는 원래 비유라는 고유의 뜻을 지닌 ‘파로볼레’가 아닌 ‘파로이마이’로 ‘격언’ 혹은 ‘비사’(比辭)라는 뜻”이라며 웨스콧(Wescot)의 “단순한 비유라기보다는 압축된 사상으로 가득 차 있는 신비스런 말”이라는 설명 인용을 덧붙였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처럼 메시지가 스토리 속에 숨어 있고 핵심만 중요한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양과 목자의 비유’처럼 그 이야기의 목적뿐만 아니라 내용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모두가 다 중요한 비유라는 뜻이다.

‘양과 목자의 비유’는 당시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 대다수가 유목민들이었기에 그들이 쉽게 알아듣도록 의도적으로 자신의 희생이 자발적임을 강조하신 비유였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대체로 구약시대에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목자들을 혹평한 말씀들(렘23:1-4, 25:32-38; 슥11:5; 사56:9-12; 겔34:1-16)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참 목자시라는 말씀들(시80:1, 23:1; 사40:10-31)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비유였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양의 문’(7절, the gate for the sheep)이며, 또 ‘선한 목자’(11절, the good shepherd)라고 하셨다. 자기 계시의 말씀인 ‘에고 에이미’(εγω ειμι; I am; 나는…이다), 둘 다 비유적 용법이며 신학적으로는 ‘구원론’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여기서 “나는 양의 문이라”는 말씀은 동굴이나 돌로 쌓은 벽이나 나뭇가지로 엮은 담으로 둘러싸인 양 우리의 하나밖에 없는 출입문으로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생명에 이를 수 없는 구원의 유일한 문이자 안전과 만족을 보장하는 문이라는 말씀이다. 9절에서 거듭 자신을 문이라고 하실 때 ‘들어가며 나오며’라고 표현하신 것을 J.R.힐(Hill)은 평안과 풍족의 삶을 묘사하는 히브리적 표현방식이라고 했다. 즉 7“I am” sayings의 세 번째인 이 말씀은 “예수님은 새 생명을 주고 새 생명 안에서 자라도록 필요한 모든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풍성한 삶의 절대 필수”(absolute necessity)라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아침이 오면 문지기는 양 우리의 문을 열고, 목자는 양들을 향해 한 마리씩 그 이름을 정답게 부른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므로 목자 곁에 모여든다. 목자가 앞장서서 양들을 이끌면 양들은 목자의 뒤를 따라 싱싱한 풀이 있는 초장으로 간다” 요한은 팔레스타인의 목가적 풍경을 떠올리며 목장의 단순하고 소박한 하루의 생활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양의 문 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풍성한 삶’(초월하는 삶)까지 누릴 것이라고 했다(10절). 반면에 양들을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문이 아닌 곳으로 양의 우리를 넘나드는 도둑들과 강도들을 등장시키며 백성의 지도자들은 성전에서 장사하며 부당이익이나 추구하고 ‘자기 배만 불리우고’ ‘양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악한 목자로 묘사했다. 그들에겐 화가 있을 것이다(마23:13).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