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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게는 세 가지 별명들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말씀, 빛 그리고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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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요1:3-5)

-예수님에게는 세 가지 별명들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말씀, 빛 그리고 생명이다.

 

요한복음이 기록된 여러 가지 목적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로 사람들에게 알려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나 초라하고 별것 아닌 사람으로 보여 졌다. 그는 구유에 누이신바 되었다. 가난한 마을 나사렛 동네에서 사셨다.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여느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으로 보였던 예수님은 실은 왕 중의 왕이었다. 그는 권세가 있어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셨고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하셨으며 죽은 사람을 살려내기까지 하신 분이었다. 바로 그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셨으며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다. 이런 사실들을 요한복음은 밝히려고 하고 있다.

 

1.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지으셨는데 어느 것 한 가지라도 그가 짓지 않으신 것은 없다. 깊은 산 속의 이름 모를 풀 한 포기라도 그가 짓지 않으신 것은 없다. 높은 산들을 그는 만드셨다. 76억이나 되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그가 만드셨다. 그가 우리를 만드셨기에 그는 우리를 속속히 알고 계신다. 그는 우리가 죄인임을 아신다. 연약함을 아신다. 그렇기에 정확하고 완전하게 인간의 병을 고쳐 주셨다. 그 창조주가 하나님을 알려주는 말씀으로 오셨다. 동시에 그는 창조의 목적을 알려주려고 오셨다. 그 목적은 그가 정하신 목적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 모든 것들의 중심에 계실 때, 그 목적은 더욱 빛난다.

 

2.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라면 당연히 그는 생명의 창조자이다. 생명은 너무나 귀하고 신비롭다. 사람들에게는 육신의 생명이 있다. 또한 영적인 생명이 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 이후에는 지금과 다른 부활체의 생명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생명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그 안에는 생명이 풍성히 있다. 그는 이 생명을 사람들에게 만들어주시고 나누어주신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그러자 사람이 산 사람이 되어 생령이 되었다(창2:7). 예수님은 자신이 이런 생명을 나누어주실 수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5:21). 바울 사도는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활동하며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행17:28). 그는 또 말하기를,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고 말했다(고전15:45).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니까 산영이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어 살려주는 영이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생명을 나인성 과부의 아들에게 주시어 그를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었다. 죽은 나사로도,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살리셨다. 죽은 사람을 단순히 살려낸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생명을 주어 다시 살려내신 것이다. 생명은 일차적으로는 창조된다. 다음으로 생명은 유지되어야 한다. 해와 물과 공기 그리고 영양분에 의하여 자연의 생명은 유지된다. 영적 생명도 동일하게 창조된다. 그러나 영적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빛이다. 물론 햇빛과 같은 자연의 빛이 아니다. 곧 예수그리스도다. 예수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곧 빛이다. 빛이 곧 생명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에게는 세 가지 별명들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말씀, 빛 그리고 생명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그 말씀의 형태는 여러 가지였다. 먼저는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이를 쉐키나라고 한다. 제사 후에 이 쉐키나의 빛이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에게 비추어졌다. ‘내가 너희의 속죄제를 받고 너희들의 죄를 오실 메시야 안에서 속하였느니라.’ 말씀은 없지만 이런 의미의 빛이다. 비록 말씀이 음성으로 들려오진 않았지만 천 마디 만 마디의 의미가 포함된 소리 없는 말씀이었다. 어느 때는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그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어느 때는 사람들의 심령에 이미 새겨진 말씀이 더욱 깨달아지고 해석되고 믿고 순종하게 하는 조명의 말씀으로 그의 백성에게 임하여지기도 하였다. 이는 그의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로 도덕적으로 깨끗하며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 가지를 다 가지신 분으로 오셨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바로 말씀이었다. 그는 지상에 내려오시어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비추어지게 하시는 쉐키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시었다(요12:45). 누구든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만 하면 그 속에 빛이 비추어진다. 깨달음이 생기고 이해가 생기고 믿어지고 마침내 많은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게 된다. 누구든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하나님을 본다. 그는 예수님을 봄으로 이미 하나님의 쉐키나를 본 것이다. 그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계시한다. 그의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 살아나게 한다.

그 후에는 반드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다. 영혼이 살고, 더 살고 부활의 생명이 약속된다. 육신의 생명이란 덤으로 주어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식물의 생명이 살고 더 사는 길이 있다. 햇빛을 받아야 한다. 같은 빛이라고 전등을 비추어 식물을 살게 할 수는 없다. 횃불을 비추어 살게 할 수도 없다. 오직 햇빛이어야만 한다. 햇빛은 다른 빛과 근본에서 다르다. 다른 빛은 밝게 할 수도 있고 따습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햇빛은 이런 것 이외에 생명을 나누어주는 신비를 갖고 있다. 식물은 이 햇빛을 받아야만 살고 또 살수가 있다.

영적인 세계가 그렇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오셨다. 지금도 말씀이 전해지면 인격이신 그가 임재 하신다. 그러므로 말씀이 임하면 빛이 임한 것과 같다. 깨달아지고 믿어진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알게 된다. 자신이 죄인임을 안 결과 전적으로 겸손해진다. 전적으로 주님을 믿는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생명이 임한다. 거듭남의 생명이 임한다. 살고 또 사는 생명의 풍성함이 임한다. 말씀이 임하면서 동시에 생명이 소생된다. 말씀의 풍성은 생명의 풍성이 된다. 마침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작은 빛이 되어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비추어 준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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