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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표적, 나사로를 살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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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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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40

 

일곱째 표적, 나사로를 살리시다

요11:17-44

 

 나흘이 지났다.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낸 직후에 죽은 것으로 보이는 오라비 나사로는 이제 정말로 죽었다. 당시 민간에 퍼져 있던 사흘 안에는 그 영혼이 죽은 사람의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믿었던 시간도 다 지났으니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제로, 다 끝났다.

 

당시 유대인들은 죽은 자의 집을 방문하여 유족들을 위로하는 것을 의무로 생각했기 때문에 3남매의 집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와 있었던 것 같다(19절). 그런데 요한은 그 유대인들 가운데 누군가가 예수께서 마을 쪽으로 오고 계시다고 전했을 때 마르다는 마중하러 나왔지만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20절)고 했다. 모리스는 마르다의 활동적인 성격 때문일 가능성과 집안의 주인이 된 마르다에게 먼저 기별이 되었을 가능성 그리고 손님 대접에 주인노릇 하는 마르다와 조문객을 위해 자리를 지키는 마리아의 역할 분담의 가능성을 들었지만 너무 늦게 오신 예수님에 대한 섭섭한 마음의 표출로 이해할 만한 뉘앙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인사보다는 신앙고백을 했고, 나중에 마리아도 똑같은 고백을 한다(32절). 이것이 두 자매의 믿음 수준이었다.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22절), 얼마나 멋진 신앙인가? 물론 예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셨을 때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24절)라고 대답함으로써 “당장은 아니지요?”라는 반응이기는 했지만 마르다는 분명한 부활신앙을 갖고 있었다. 당시의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당한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급기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예수께서 요한복음서에서 다섯 번째인 ‘I am’ saying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절)라고 물으셨을 때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27절)라고 최고의 기독론을 담은 정확한 고백을 한다. 제자들이 했던 고백보다도 더 멋진 고백이었다. 물론 이 고백도 여전히 마지막 부활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었다.

 

요한은 이때까지도 예수님은 여전히 마을 밖, 마르다가 마중 나갔던 곳에 계셨다고 했다(30절). 전혀 서두르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리아를 찾으셨고, 마리아는 급히 예수께 나아가 그 발 앞에 엎드려 언니처럼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을 표하며 울었다는 것이다(28-33절). 모리스는 요한이 예수님과 마리아의 만남을 간략하게 기록했고, 마리아는 마르다의 신앙고백과 같은 뛰어난 고백도 없었음을 은근히 부각시켰던 것으로 해석했다.

 

마리아의 울음과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울음을 비통히 여기고 불쌍히 여겼던 예수님은 우셨다(35절). 35절은 성경 중 제일 짧은 구절이다. 34절의 ‘비통히 여기다’의 헬라어가 ‘분노하다’이기에 35절의 ‘Jesus wept’, 예수님이 우신 것은 죽은 나사로가 불쌍한 측면도 있었지만 죽음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불쌍하고 답답해서 우셨던 것 같다.

 

드디어 무덤에 가신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다. 마르다가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40절)고 하셨고, 감사기도 후 큰소리로 외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Lazarus, come out!). 성경은 예수님의 이 한 마디에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왔다고 했다(44절). 나사로가 살아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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