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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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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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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43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요12:12-19

 

나사로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일 음모를 꾸미는 상황, 예수님은 피하기는커녕 3㎞쯤 떨어져 있던 베다니에서 예루살렘 입성을 결심하시면서 사건은 이제 절정으로 치닫는다. 예수님의 결심은 예루살렘 주변에서 야영하고 있던 순례자들까지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 열광한 많은 무리들로 하여금 그를 메시야, 능력 있는 새 왕으로 연호하는 결과를 빚어냈다. 곧 바로 이어질 십자가와는 대조적인, 매우 다른 그림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 네 부류로 구분된다. 첫째 반응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면서 구약의 예언(슥9:9)을 성취하고 있는 ‘큰 무리’(12절, the common people)의 환영하는 분위기다. J.R.힐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가 유월절에 2백만 명이 넘게 모인다고 말한 것은 과장이었던 것 같다”며 예레미아스(J. Jeremias)가 “시내에서 숙박할 수 있는 인원이 15만 명쯤이었다”고 했던 말을 인용하며 당시 무리의 규모를 짐작케 했다.

 

큰 무리는 두 부류로 구분이 된다. 하나는 나사로를 살리며 보이셨던 표적을 익히 알고 있는 베다니와 그 주변에서 온 사람들이었고(17절), 다른 하나는 다른 지역에서 왔지만 예수님의 표적이야기를 듣고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려고 나온 사람들이었다(12, 13, 18절).

 

예수님은 그들의 반응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으나 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다. 율법에 의하면 종려나무는 초막절 때 사용하라(레23:40)고 했는데 세월이 흘러가며 다른 절기 때에도 사용했던 것 같다(마카비Ⅰ서13:51, 마카비Ⅱ서10:7). 무리는 쓰임 받는 것의 의미도 명확히 모른 채 정복자를 환영하며 승리의 표로 종려나무를 흔든 셈이다.

 

그들이 연호한 ‘호산나’는 “이제 구원하소서”를 뜻하는 아람어나 히브리어의 자역(字譯)으로 시118:25, 26에서 따온 환호사였다. 유월절에 부르는 습관적인 찬송이 아니다. “폐하 만세”와 같은 연호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한 줄기찬 예찬이었다. 나중에 자기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순식간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19:15)고 외치는 폭도로 돌변하지만 입성 당시만큼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시인했던 것 같다(18절).

 

예수님은 나귀 타고 입성하셨다(14절). 왕의 행차치고는 초라한 모습, 마치 망상에 빠져 여윈 말 로시난테를 타고 모험을 감행했던 돈키호테처럼 나귀 타고 입성하신 퍼포먼스(performance)는 좀 우스꽝스러웠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선장군보다는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셨으니 말보다는 나귀가 더 적합한 상징이었고, 무엇보다 예언의 성취라는 점이 중요했다. 일찍이 스가랴는 “…보라 네 왕이…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9:9)라고 예언했었다.

 

 

 

 

둘째 반응은 제자들의 헷갈림이다. 그들은 영적인 메시야임을 드러낸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를 나중에야 깨닫는다(16절). 입성 당시까지도 그들은 여전히 헷갈렸다. 셋째 반응은 바리새인들의 절망이다(19절). 그들은 마치 온 세상이 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 같아서 그저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넷째 반응은 헬라인들의 예배하려는 태도다(20절). 그들은 이방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명절에 예배하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다양한 분위기 속에서 적들이 득실거리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그러나 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고 그 깃발 아래 모이라는 입성이 아니었다. 선동하거나 이스라엘의 회복을 부르짖는 입성도 아니었다. 그 입성은 갈보리, 즉 십자가를 향하는 입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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