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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이루라(빌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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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이루라(빌2:12-18)

-구원받은 성도다운 삶으로 경건하고 거룩하게 변화되어 간다는 의미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며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를 방문하여 복음을 증거했다.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기 때문에 바울이 기도처를 찾던 중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 여인들 중 자주장사 루디아가 바울이 전한 말씀을 청종하여 자신과 가족들이 구원을 받고 유럽의 첫 교회인 빌립보 교회가 설립되었다. 주님께서 바울을 통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간곡한 권면의 말씀이 있다. 그것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다. 조금은 생소하게 들리는 말씀이다. 이는 우리의 구원이 마치 확정되지 않은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 말씀으로 보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물론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완성되었다. 우리 성도들 중 누구라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면 천국에 갈 것이다. 이는 우리의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구원 받은 성도가 살아야 할 성화적 삶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5절은“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속량이란 몸값을 지불하였다는 말이다. 우리는 죄의 종, 사탄의 종, 그리고 사망의 종이었다. 이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죄의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다. 그리하여 이제는 자유 함을 얻은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롬8:14-15).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딸이 되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 우리 모두는 어느 시간에라도 이 땅을 떠난다면 아버지의 나라에 가서 산다. 그런데도 우리는 실제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과 같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하고 거기에 맞는 습관을 가진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은 이전에 죄의 종노릇할 때와 거의 같다. 많은 면에서 변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아직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절제된 경건한 분위기에서는 상당히 변화된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 하나님의 자녀다운 합당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이전 죄의 종노릇할 때의 분위기에 휩싸이면 이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의 옛 모습을 하나하나 고치고 시정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구원을 이루라’ 는 말이다. 구원받은 성도다운 삶을 살라는 말이다. 이를 다른 말로 성화라고 말한다. 성화란 이전의 모습에서 구원받은 성도다운 삶으로 경건하고 거룩하게 변화되어 간다는 의미이다.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과제 중 중요한 한 가지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는 말씀이다(빌2:14). 이 말씀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듬어 가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매우 소중한 말씀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이전의 모습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바로 그것이 원망과 시비이다. 원망이란 투덜거리는 불평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고 손해를 당하면 잊지 아니하고 계속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원망이다. 이런 일이 버릇이 되면 그 마음이 온갖 원망으로 가득 찬다. 대개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척 등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손해를 받는다. 그러므로 원망하는 말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대개 가족을 포함하여 가까운 사람들이 많다. 이런 습관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비란 악의적인 논쟁을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을 예의 주시하여 보고 자신의 표준에서 판단하여 논쟁을 벌이는 버릇이다. 모든 일에서 매사에 다른 사람의 행동을 평한다. 쉽게 말하고 흉을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다 구별해 놓는다. 상대해도 좋을 사람,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별한다. 상대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그와 함께 일을 해보고는 거리를 두어야할 사람, 혹은 가까이 해도 될 사람이라는 식으로 사람을 구별한다. 구별만 하는 것이 아니고 왜 그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지, 왜 그가 어떤 사람을 멀리 하는지 그 이유를 늘 말한다. 이게 시비하는 버릇이다.

이런 원망과 시비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주 옳지 못한 버릇이다. 하나님 보시기에만 아니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어 가기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시정하고 없애야 할 옛 사람의 모습 중 하나가‘원망과 시비’이다. 원망과 시비를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것이다(빌2:5). 주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모든 특권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그리하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사람가운데서도 자신을 낮추셨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 그에게는 어떤 원망이나 시비가 없었다. 그가 세상에 오셔서 사람을 상대할 사람과 상대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구별하신 적이 없다(빌2:6-11). 우리가 이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겸손한 마음이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한다(빌2:3). 성도들이 겸손을 통해 서로 섬김으로 교회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언제나 가져야 한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 사도가 있을 때는 인정받기 위하여 원망이나 시비가 없다가 그가 없으면 서로 원망하고 시비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나 없을 때에도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부탁한다(빌 2:12).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얻은 자들이다. 그러나 날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한 삶은 인간이 힘쓰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작정한다고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런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하시는 분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주님의 이 명령을 실천하기를 마음으로 소원해야 한다. 그리고 생활현장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소원과 노력에 따라 우리의 삶에서 어떤 원망이나 시비가 없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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