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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과 모택동 그리고 중국공산화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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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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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간석제일교회 원로

 

모택동은 1949년 10월 1일 천안문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고, 본색을 드러내 6년 동안 자국민을 상대로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정권수립 6년 되던 1957년 모택동은 “전국에서 70만명을 죽이고 250만명이 체포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영국 역사학자 오드 아르네 베스타는 1949 ~ 1955년 사이에 200만명에서 250만명이 처형당한 것으로 추산했다.

역사는 지금도 증언 한다 “우리끼리 왜 싸우냐던 장학량, 모택동에게 이용당했고 중국의 운명은 바뀌었다”고 1936년 12월 12일 시안사변은 경고한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적 우위도 최후의 승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언제나 적은 내부에 있다. 한편 장학량은 장개석을 따라 난징에 갔다가 곧장 연금 당했는데 자그만치 56년간 그렇게 지냈다. 타이베이에서 눈물을 흘리며 시안사변을 참회하는 20만자의 자아비판을 제출했지만 장개석은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1993년 그는 자유를 언어 하와이로 이주 2001년에 사망했다. 또한 장학량과 시안사변을 일으킨 17로군 사령관 양호성은 국외로 도주했으나 함께 일본을 물리치자는 장개석의 제안을 받고 돌아온 뒤 국민당 비밀경찰에 잡혀 총살당했다. 어느 때나 개인적 사감과 원한이 국가나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고 혼란케 한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초대왕 사울은 장대한 용사였고 아들들의 후원도 막강했으며 정치도 안정단계에 있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른 뒤 민심이 다윗에게도 쏠리는 듯하자 개인적 사감을 가지고 그를 제거하려고 몸부림치며 10년이 넘도록 국정보다 다윗을 죽이려 힘을 쓰다 결국 블레셋의 침공을 막지 못하고 전쟁터에서 아들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마 현대사에서 개인적인 원한에 가장 심각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사람을 꼽으라면 넬슨 만델라일 것이다. 그는 정적들에게 미움을 사 27년간 투옥 당했는데 그 중 18년은 섬에 있는 감옥에서 보냈다. 그 후 자유를 언은 뒤 남아공화국 대통령이 되었으며 재선도 넉넉히 할 수 있었으나 절대 고수하였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누구보다 사감과 원한으로 피의 보복과 청산을 주장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화합의 새 물결을 이루고 화해의 꽃을 만개시켰던 것이다. 감리교 교인이기도 한 그는 애칭이자 존칭인 마디바(Madiba) 즉, 어르신이라 불렸다. 또 타타(Tata) 즉 아버지라 혹은 쿨루(Khulu) 즉 훌륭하다, 위대하다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설레이는 세계사적 희망을 성취하기 위한 시점에 서있다. 왜 핵무기 철패와 남북화해 평화통일이 세계인의 기대와 후원과 기도의 제목이 되었는가, 과연 우리 때문에 세계인의 마음에 떨어지는 어떤 선물이 있기에 그럴까, 결코 아니다. 쉽게 말해서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우리만이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 자체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방송, 교육에 이르기까지 패거리 놀음이 사라져야 한다. 갈등과 대립과 청산과 해고가 난무하고 피를 흘려 남북으로 흐르는 강 위에 승리의 깃대를 꽂는 것이 아니라 남북과 흑백이 일치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링컨 대통령은 남 북전쟁시 연설에서 “이 전쟁의 목표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고 유니언(Union) 즉 미국을 하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라고 역설했다. 링컨이나 만델라같은 지도자의 위대함이란 이런 것이다. 성숙함, 대범함이란 아무에게서나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큰 꿈의 사람이 나타나는 그런 대한민국에서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행복한 백성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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