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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편지’ ‘우표’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일상에서 필요하지 않는 말이 되었다. 손으로 쓴 편지를 받거나 쓴 기억이 오래전이고, 아파트 입구에 설치돼있는 우편함에도 편지는 없다. 대부분 홍보물이나 고지서들이다. 우편배달원은 과거보다 더 많은 우편물을 나르고 있지만 정작 그 안에 편지는 거의 없다. 편지가 없어지는 과정에서 같은 뜻의 외래어가 통용되고 있다. 즉 ‘메일’이라는 말이다. 번역하면 편지가 될 것인데 정작 현실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메일은 e-mail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e-mail의 등장과 함께 스마트폰의 발전이 동반되면서 ‘문자’와 영상이 편지를 대신하게 되었다. 게다가 지금은 소위 ‘카톡’으로 대변되는 각종 개인 관계망을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와 동영상들이 편지를 대신하고 있다. 편리성과 즉답을 받을 수 있는 유용성과 경제성이 손으로 쓰는 편지를 대신하기에 충분하다. 손으로 쓴 편지는, 그것을 보내기 위해서 우체국을 가야 한다. 그리고 그 우편물이 몇날 며칠이 걸려서 전달이 되면 다시 답신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한 번 편지를 주고받으려면 한국의 우편배달 현실에서 지역과 상황의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한 보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다 우체국을 찾아가 우표를 구입하려고 해도 우표를 필요한 만큼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표도 이제는 수집을 위한 것이나 기념물로서 소장하게 하는 용도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우표발행에 대한 정보를 갖고 수집을 위해서 사러가야 하는 것이 되었다. 단순히 편지를 부치기 위한 도구가 아닌 것이다. 혹 필요하다면 즉석에서 뽑아주는 스티커가 대신하고 있다. 언젠가 연말에 우편물을 부치기 위해서 우체국 직원과 실랑이를 한 적이 있다. 그 많은 걸 왜 굳이 우표를 붙이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스티커로 하면 쉽고 빠른데... 그 이유를 설명했지만 직원은 못마땅하게 바라보면서 퉁명스러운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결국 그 다음해에는 우표를 미리 주문해서 확보했던 기억이다.

빠르고, 편리하고, 시간적으로 유리한 전자관계망이 편지를 대신하는 시대에 사는 편리함이 편지를 버리게 한 것이다. 그러나 관계망을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는 대부분 지워버린다. 그리고 기억에 남지 않으며, 그것을 곱씹어 음미할 수 있는 여유도 없다. 다만 의사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것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고, 차를 우려 마시듯 음미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30여년 전 한 대중가요 가수가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 그 말에 담긴 현상적 해석을 여러 각도에서 해야 했던 일이 생각난다. 사랑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담긴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여기서 연필로 쓰라는 표현은 지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기에 당시 이 표현에 대한 해석은 사회적으로 공론을 일으키는 것이 되었다. 또한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는 얼마 지난 후 이혼을 함으로써 자신의 노래를 입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이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편지라는 단어가 사라진 현재에서 연필로 쓴 편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손편지를 대변하는 아날로그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필기구가 무엇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연필로라도 쓴다는 것에 담긴 의미는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예 쓰는 것을 거부한다. 오히려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지우거나 거둘 수 없기 때문에 남기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관계망을 이용한 문자나 영상조차도 남기지 않는 것을 선호하고, 개인이 사용하는 것들도 모두 삭제한다. 그 글에 담긴 것을 다시 음미하고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않는다.

 

며칠 전 중국에 계신 어떤 권사님으로 부터 인편으로 보내온 편지지만 손으로 쓴 편지를 전달 받았다. 받기 전에 전화로 편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전달해주시는 분과 만나서 자연스럽게 전달받았다. 그분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돌아와서 편지봉투를 열었을 때, 내용을 보기 전에 권사님이 쓰신 글씨가 한참이나 잃어버렸던 무엇인가를 찾은 느낌이라고 할지 ...,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아야 했다. 중국산 노트를 뜯어서 거기에 쓴 글씨가 순간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편지로 밖에는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여의치 않았던 시대에 편지는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편지를 보낸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같은 마음으로 편지를 썼고, 기다렸다. 따라서 편지를 펼치는 순간 보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읽어가는 기쁨이 있었다. 내용에 따라서는 슬퍼서, 아파서 편지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편지는 잘 간직하면서 생각이 날 때면 꺼내서 읽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도 편지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이미 별세의 사람이 된 그와의 만남도 소장하고 있는 편지를 통해서 가능하다. 하지만 SNS가 편지를 대신하는 오늘 더 이상 그러한 만남을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됐다.

권사님의 편지는 그렇게 나를 순간 이동을 하게 했다. 권사님의 편지도 몇 번인가 읽어야 했다. 거기에 담긴 사랑과 간절함이 반복해서 울림이 되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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