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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 마르다도 마리아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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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영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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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귀가 서로 잘 안들리는 노부부 이야기입니다. 거실에서 서로 좀 멀리 떨어져 있는데 남편이 아내를 불렀습니다. “여보~!” 아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좀 더 가까이 가서 “여보~!” 한번 더 불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반응이라 아주 가까이 가서 또 한번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자 이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기분 나쁜 목소리로 “왜 불러도 대답이 없소!” 말씀하였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역시 퉁명스런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니, 세 번이나 대답했는데 그렇게 들리지 않으면 우리 앞으로 어떡해요?!”

 

마찬가지로 목사님들은 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런 설교를 교인들이 잘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한다고 투덜댑니다. 반대로 성도님들은 할 수 있거든 좋은 마음으로 목사님 설교에 응답하고자 하는데 목사님들이 제대로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설교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모든 교회의 모습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교회 내에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은 자신의 설교를 돌이켜 보며 다시한번 연구와 수고의 땀을 흘려 교인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준비합니다. 마치 해마다 아내의 생일을 챙기지 못해 늘 핀잔을 받던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기어코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여 기쁨을 주리라 각오를 단단히 하였습니다. 드디어 생일날 아내의 나이만큼 크고 빨간 장미꽃다발을 준비하여 선물하였습니다. 큰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아내가 화를 버럭 내고 말았습니다. 그 빨간 장미꽃다발을 땅에 던지면서 말입니다. “당신, 내가 나이를 많이 먹는 게 그렇게 좋아요?!!”

요새 남편들은 적극적이고 요리 잘하는 마르다 형을 좋아할까요? 아니면 사색적이고 순종 잘 하는 마리아 형을 좋아할까요? 지금 시대는 마르다도 아니요 마리아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식사 전에는 마르다를 찾다가 식사 후에는 마리아를 찾는다고 합니다. 양면성을 다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님들도 본문 해석의 정확성과 동시에 그 본문 중심의 적용 능력을 더욱 향상 시켜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주중 내내 동료 신학생들만 만나는 신학교내의 신학생이 아니라 무신세계 삶의 현장에서 받은 말씀을 적용하여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평신도 선교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는 해석과 적용의 수레바퀴가 동시에 잘! 굴러가야 합니다.

설교는 마치 건물의 창과 같습니다. 본문해석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그것에 치우치면 창문이 없는 건물처럼 우중충하며 매력 없는 설교가 됩니다. 반대로 적용을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예화를 많이 사용하면 마치 너무 많은 창문만 있는 건물이 가벼워 보이듯이 설교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 두 가지의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어가는 능력을 성령의 역사와 본인의 노력으로 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교인들은 설교를 경청해야 합니다. 그 목사님의 개인적 의견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경청하기 위해 토요일 밤을 마치 주일 예비일처럼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마치 미국의 전설적인 부자였던 록펠러처럼 예배당 앞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즉 영적파장을 방해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이 적은 앞자리를 금방석 처럼 여기며 다투어 앉으려는 교인들이 많은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다양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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