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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_ 요16: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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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신기중앙침례교회

“내가…아버지께로 가노라”(I am leaving the world and going back to the Father), 예수님은 또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씀을 하신다. 지금까지는 ‘비유적으로’(figuratively, dark sayings 추상적인 사고에 반대되는 것으로 진리나 실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그림 같이 표현하는 방법) 말씀하셨지만 이제 곧 때가 되면 비유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밝히 말씀하시겠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제 그 뜻을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29절). 그러나 여기서 때는 부활의 때를 가리킨 것, 제자들은 그때가 될 때까지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때가 되면 마땅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능력이 생긴다고도 하셨다(23절 이하 참조). 모리스는 여기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그의 지지(支持- 찬동하여 도와서 힘을 쓰는 것)를 천명함이 아니라 인간을 위하여 행하신 예수님의 구속사업과 예수님의 인격을 바탕으로 한 호소(呼訴)함’이라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 영원히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중보자(中保者)가 되신다는 말씀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반드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직무 위에 확고히 서 있어야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라며 아들이 아버지께 너그러워 주십사 하고 설득하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누구에게 설득 당할 분도 아니지만 아버지와 일체(unity)이신 아들이 굳이 저희를 위하여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친히 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인간이 용납될 유일한 근거는 오직 예수님과의 관계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관계를 확신하고 기도하면 된다는 뜻이다.

제자들이 주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사랑한 것은 예수님도 인정하신다(27절). 그러나 그 사랑이 아버지 사랑을 꼭 받을 만한 공로가 될 수는 없다. 당연히 저들의 사랑을 전제하여 아버지가 사랑한다는 뜻도 아니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 ‘선행적 역사’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서에서 ‘빚진 자’(I am obligated)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다.

여기서의 핵심도 역시 ‘관계’, 예수님은 계속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왔고, 아버지께로 간다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더 나아가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32절)라며 구심력을 잃은 제자들은 한계가 있어도 하나님은 한계 없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늘 함께 하는 사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를 앞두고도 예수님은 전혀 두려움이 없으시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당신을 버릴 제자들이지만 관계에 대한 확신으로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셨다(33절). 관계가 주는 평안함! 마치 부모와 함께 라면 절대 안심하는 어린 아이의 평안함이라면 이해가 될까?

어느덧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이제 다락방 강화의 결론에 이른다. 결론은 단 세 마디, “평안하라”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비결은 ‘내 안에서’, 비록 흩어짐을 당하고 환난이 필연일지라도 근심하거나 절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I have conquered, 완료형- 계속적인 승리),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승리는 내 것’이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릴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평안하라” “담대하라”, 이는 십자가로 향하는 당신의 모습이었으며 제자들의 모습이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이자 다가오는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간곡한 사랑의 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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