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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 뭘 믿기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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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자옥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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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옥 목사 인기총 수석부회장경인문화 협회장간석제일교회 고양이 눈에 늘 거슬리던 쥐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에게 걸려들었다.

 

고양이가 “그러잖아도 벼르고 있었는데 너 잘 걸렸다. 오늘이 제삿날이다. 이제 죽을 준비가 됐느냐?” 했더니 이 쥐란 놈이 하는 말 “함부로 입맛 다시다가 제 명에 못 죽지.”, “야, 너 왜 그리 객기를 부려? 임마, 넌 죽었어.”, “잡아먹어, 날? 그래 잡아먹어봐. 나 방금 쥐약 먹었걸랑!” 이쯤하면 고양이 풀이 죽을 법한데 오히려 “그래, 난 죽는 것 두렵잖아. 그러니 너는 꼼짝없이 죽을 거야!” “나 쥐약 먹었다니까”

고양이도 이젠 큰소리 한번치자 하면서 “야! 생쥐같은 놈아, 그래. 나는 생명보험 들었걸랑” 했단다.

 

하루는 강물이 세차게 흘러내리는데 전갈이 강을 건너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 망설였다. 그런데 마침 커다란 두꺼비가 강을 건너려고 하는 것 아닌가.

전갈이 큰 소리로 “두껍아 나 좀 등에 업혀 건너게 해다오.” “날 언제 물어 죽일 줄 모르는데 널 어떻게 업고 가니?” “아니야 널 죽이면 네가 필히 물에 빠져 죽을 텐데 내가 어찌 네 등을 물겠니? 걱정 마”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한 두꺼비가 전갈을 등에 태우고 죽을힘을 다해 강을 절반쯤 건너가고 있는데 전갈이 두꺼비에게 “나 너를 물고 싶어!”, “아니 나를 물어? 내가 죽으면 너는 안 죽을 줄 알아?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아!”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전갈은 천연스럽게 “글쎄, 내가 그걸 모를까봐.”, “그래. 그걸 알면서 날 죽여!”, “그렇다니까. 나는 너를 물 거야.”, “왜?”,

“왜? 나는 전갈이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쥐나 고양이처럼 막장 사회를 보는 것 같다.

 “말장난, 막말은 물론 죽창이 난무하고 난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으니 어디 죽일테면 죽여봐.”하는 극단의 행보가 이미 보편화 되 버렸다. 노사간은 그렇다 치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도 다를 바 없이 돼 버렸다.

방송법만 해도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이다. 노조는 물론 야당 환경단체 등 거론되지 않는 단체 할 것 없이 왜 반대합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면 “우리는 ○○이니까.”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행태는 지양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북한만 하더라도 그렇다. 미국 사람은 되는데 툭하면 같은 민족끼리 운운하면서 왜 우리끼리는 안 되는가?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손을 내일어도 “우리는 ○○ 이니까.”하면서 핵주먹만 내밀어야 되겠는가 말이다.

세속적인 영역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교단정치나 교회에서 까지 너도 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다 식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자기 무장과 동지들의 힘을 축척하기 위한 단합대회인 것 같아 보인다. “나는 결코 양보 할 수 없고 협력 할 수도 없어! 왜? 나는 ○○이니까!” 이런 논리와 행동뿐이거늘 우리 주변에서 무슨 대화나 선한 결론을 도출 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살만큼 살았고, 삶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고 봉사하면 나뿐이라고 튀어 나설 분들이 뭘 믿기에 그럴까?” 넋두리하는 나에게 곁에서 지켜보던 내 친구 하는 말 “뭘 믿다니! 그들도 다 하나님을 믿는 거야!”동문서답이 싱거울 뿐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대결구도를 앞세우고는 어느 쪽에서든 지지를 얻지 못한다. 더구나 전갈의 논리는 더더욱 자멸을 재촉할 뿐이다.

때마침 오래동안 갈등하던 두 전직 양김 대통령이 화해를 했다. 그리고 김대통령의 서거를 통하여 여야간 남북간에 모처럼 화해의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주여 이 화해의 무드가 거대한 쓰나미를 이루어 이땅에서 신종플루를 말끔히 몰아가며 대화와 화합의 꽃이 활짝피는 가을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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