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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_반드시 노인이어서라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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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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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멕시코시티의 대형 시장 한 구석에서 양파를 파는 포타라모라는 인디안 노인이 있었다. 시카고에서 온 한 미국 여행객이 그에게 다가와 양파가격을 물었다.

“한 줄에 10센트입니다.”

“그럼 두 줄을 사면 좀 깎아 주십니까?”

“아닙니다. 두 줄이면 20센트입니다.”

그 때 여행객은 “그러면 20줄 다 사도 한 푼도 깎아 주지 않습니까?”

“깎아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20줄 전부는 팔지를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기왕에 팔 거면 일찍 다 팔리면 좋은 일 아닙니까?”

미국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묻자 노인은 빙긋이 웃으며 “나는 지금 단지 양파를 팔려고가 아니라 인생을 사려고 여기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 시장 통의 활기와 따스한 햇볕 이웃과 나누는 대화, 이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 삶인 것이지요. 이것들을 위해 나는 종일동안 양파 20줄을 파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한 번에 모두 다 팔아버리면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단번에 내 즐거움을 잃을 수는 없지요.” 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양파 파는 노인에게는 시장에서 양파를 파는 목적이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한 줄 한 줄 파는 그 자체가 하나의 낙(樂)이고 노인의 인생 ‘누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하루를 한 몫에 팔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빨리 빨리 문화에 휘말려 살아왔다. 한 무리 동행중에 내 걸음이 늦어진다면 행여 삶의 낙오자라 취급이나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살아왔다. 사하라 사막에서 꼭 오아시스에 멈추어야 할 이유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한다.

둘째,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한다.

셋째,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아시스는 일단 쉬는 곳이다. 갈 길이 아무리 멀고 바빠도 일단 여유를 갖는 쉼의 장소다.

이솝이 어린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지나가던 이웃사람이 그런 이솝을 보고 혀를 차며 어른이 점잖지 못하게 그게 무슨 행태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이솝은 잠자코 현악기의 활을 집어든 뒤 느슨하게 풀어 그 사람 앞에 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지금 느슨해진 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계속 줄을 팽팽하게 매어 놓으면 활은 부러지고 맙니다. 그래서 다음 연주를 위해서는 활을 늦추어 놓을 필요가 있지요. 더 나은 다음 연주를 위해서 말입니다.”

현대인들은 팽팽한 활처럼 긴장된 삶을 살면서 담담하고 느슨하게 사는 여유를 잊어버린 채 저마다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바쁘다 바빠!’를 열창하면서, 고궁의 노오란 낙엽을 밟는 여유, 어린아이와 뒹굴며 놀 수 있는 여유, 내외간에 차 한 잔을 나누며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 고향의 잊혀졌던 친구에게 문자를 날리는 여유.

여기에 오늘과 그리고 내일의 행복이 감추어져 있는 것을 망각한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칠십을 넘어서야 이런 상념에 젖어보게 되었다. 노을이 질 때 억새의 은빛 물결에서, 해질 무렵 강아지풀의 반짝임에서 우리는 익어가는 가을의 냄새를 맡는다. 인생의 가을을 맞아 지금까지는 ‘더 많이’ ‘더 빨리’ 만이 우리 삶의 목표였다면 앞으로의 남은 여정은 인생 누림에서 달달한 즐거움과 그윽한 행복을 찾는 품격과 여유가 묻어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부디 당신의 재빠른 성과를 얻기 위해 당신의 현재, 그 즐거움을 가볍게 팔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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