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목회

성경속세상 분류

기러기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이종전 교수

 

어디선가 낯익은 소리가 들린다. 높아진 하늘을 무심히 올려다본다. 소리를 향한 고갯짓이었다. 파란 하늘은 깊어가는 가을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도심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높아지는 하늘이 있기 때문이 아닐지. 가로수로 심겨진 벚나무가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가을인가 하지만, 파란 하늘은 가을 한 가운데 있다고 한다. 깊어진 가을만큼이나 파란 하늘은 무뎌진 감성을 깨워주려는 듯 그곳에 머물라 한다.

들려오던 소리가 점점 또렷해 질 무렵 내 시선이 멈춘 곳은 남하하기 위해 비행중인 기러기 무리들이었다. 파란 하늘에 삼각편대를 이루어 날고 있는 기러기 무리가 눈에 잡혔다. 일사불란한 편대는 남쪽을 향해 비행하면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인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면서 선두에 선 기러기를 따라 흐트러짐 없이 날고 있었다. 소리와 함께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한 기러기 편대는 이내 내 시야로부터 멀어져갔다.

녀석들이 사라진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벌써 기러기들이 시베리아 남부 어딘가에서 녀석들이 알을 낳고 부화시켜 새끼를 기르면서 여름을 나고 이제 남녘으로 겨울을 나기 위해서 이주를 하는 게다. 녀석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과 생명체들의 생존관계,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만들어주는 아름다움, 그냥 바라만 보아도 아름답기만 한 가을 한 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굳이 가을을 맞으러 어디론가 가지 않아도 하늘만 한 번 우러르면 자신이 이미 가을 한 가운데 있음을 알 수 있으련만 그러한 여유조차 없이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잠시 머물러야 했다. 정녕 인간이 분요함을 만들었건만 그 안에 갇힌 채 분요함에 매이는 어리석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현명한 현실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나만의 모습일까.

기러기들이 남녘으로 사라진 후에도 귓가에 맴돌고 있는 녀석들의 소리는 계속해서 귓전을 울리고 있다. 한 무리가 전부는 아니기에 얼마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다음 무리는 아직 멀리 있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앞서간 부지런한 무리가 일찍 고향을 떠났는지 모른다. 부지런한 대장을 만난 무리가 일찍 내려와 터전을 잡고 여유 있는 겨울나기를 하려는지 모른다. 하여, 여유를 부리면서 늦게 출발한 무리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지 모른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 보고 싶지만, 그마저 두 발 땅에 딛고 서 있어야 하는 한계를 넘을 수 없는 자신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어떻든 덕분에 세월이 가는지도 모른 채 살고 있는 나로 하여금 하늘이라도 올려다보게 하니 고마운 일이다. 무심히 땅만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갇히고, 도시에 갇힌 모습으로 오직 눈앞에 것만 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을이 왔다고 알려주니 고마운 일 아닌가. 녀석들의 가을 비행은 월동을 위해서 남녘으로 가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니 머지않아 많은 무리들이 남하하는 비행을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가을이 깊었다는 의미이고, 늦장을 부리던 녀석들은 야간비행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야간비행을 하면서 각자의 위치확인을 위한 신호는 온밤을 지새우게 한다. 달이라도 뜬 날이면 어떤 사람들에게 눈물로 그 밤을 새우게 한다.

철을 따라서 생명체들이 지구 안에서 자신들의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눈물을 짓게 할 만큼 아름답건만 무엇에 바쁜 것인지. 아니, 아름다운 것을 찾고 있으면서 정작 아름다운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멀리 사라진 녀석들이 내게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냥 하늘이라도 한 번 올려다보라고!’ 시간이나 환경만 탓하지 말고 주어진 공간에서 그냥 고개만이라도 들어보라고!

생각해보면 녀석들은 단순히 유유자적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생존을 위한 처절한 여정이다. 그럼에도 철을 따라 사는 녀석들은 철이라도 알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철도 없이 자기 앞만 바라보고 있는 인간은...? 자기 것만 챙기려고 주변도, 하늘도 올려다 볼 수 없다면 창조주의 선물을 발로 차버리며 신세타령만하는 것 아닐지. 철이 바뀌어 때를 따라서 기러기들은 남녘으로 이주하고 있는 날이다. 하지만 정작 인간은 여전히 철도 모른 채 자기가 어디에 있어야 할는지조차 모른 채 버벅거리고 있는 모습이 아닌지.

녀석들이 깨달으라 한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