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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용근 목사를 조명한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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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모 목사

 

양용근이 일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큰 형 양용이와 함께 일본에 건너갔고 우선 대학입학을 위한 검정고시에 합격을 해야 했다. 두 형제가 함께 직장에 다니면서 양용근은 야간에 학원에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관동대지진 사건이 일어나고 두 형제는 일본인들에게 붙잡혀 처형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양용근의 신앙과 삶은 달라졌다.

 

1. 관동대지진

관동대지진 사건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매그니튜트 7.9의 지진이 관동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지진 발생시의 화재가 피해를 크게 하고, 도쿄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괴멸에 빠졌다. 사망자가 9만 명을 넘었고 무너진 가옥은 약 17만 호, 소실된 가옥은 38만호를 넘었다”고 했다. “당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총 14만 2,800여 명, 부상자 10만 3,733여 명 피난민 약 190만 명이라고 발표되었다” 이런 큰 피해를 가져온 관동지방의 대지진은 화재를 동반함으로 더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

지진이 일어난 시간이 정오쯤이라 각 가정마다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사방에서 화재가 발생하여서 피해가 가중되었다. 그 화재를 조선 사람들이 불을 질러서 난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까지 나돌았다. 이런 유언비어 때문에 일제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조선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로 인해서 학살을 당한 조선 사람이 6,000명의 조선인이 학살이 되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많은 23,000여 명의 조선인들이 관동 대지진 사건 때 일본인들의 학살에 의해서 희생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인 폭동설’을 유포하여 계엄령을 선포한 일제는 군인들로 하여금 조선인은 죽여도 좋다는 명령을 하달하고 조선인을 무차별 사살하게 만든다. 조선인임이 확인되면 무조건 불령선인으로 취급하고 무조건 사살하였다. 처음에는 계엄군과 경찰이 조선인들을 붙잡아 학살 했으나 나중에는 자경단이 합류하여 조선인 학살에 앞장섰다. 자경단의 살인 방식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한 방식이었다. 갈고리, 철사, 권총, 일본도, 죽창, 등의 무기가 사용되었으며 불에 태워서 죽이기도 했다.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을 당했는데도 이 사건이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2. 양용근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

양용근 형제도 이 사건에 연류 되어서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동생 용근의 학업을 돕기 위해서 함께 일본으로 온 맏형 용이와 동생 용근은 관동대지진으로 조선인 학살이 가장 심했던 동경의 아라까와 강 부근에서 방을 얻어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집마다 수색을 해오는 자경대원들에게 발각이 되고 두 형제는 붙잡혀서 끌려 나가게 되었다.

자경대원은 두 형제를 새끼줄로 묶고 생선을 엮듯이 엮어서 끌고 나갔다. 밖에는 이미 열다섯 명쯤 되는 조선인들이 새끼줄로 엮인 채 서 있었고 형제는 그 뒤에 엮였다. 집에서 약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갈대밭이 있었고 그 근처에 좀 넓은 공간이 있었다. 거기에 이르자 자경대원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거기 한 줄로 세울 것을 명령하고 모두 하늘을 보고 드러눕게 한 다음 앞에서부터 처형을 하기 시작했다. 한 발로 가슴을 밟고 일본도로 목을 찌르며 죽이기 시작을 했다.

앞에 있는 조선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속으로 부르던 찬송을 소리 내어 부르기 시작을 했다. 형 용이는 어떻게 하든지 동생만은 살리고 싶은 생각으로 동생을 자기 밑으로 하고 위로 올라탔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살아남아서 집안을 살려야 해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형 위로 올라타면서 형님은 장남이니까 살아남아서 집안을 살려야 한다고 했으나 이런 노력은 허사였다. 새끼줄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 앞에 있는 사람이 다 죽임을 당했다. 이제 두 형제 차례가 되었다. 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다.

그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말을 탄 사람이 어두움 속에서 나타나서 “사형을 중지하라, 상부의 엄명이다. 남은 자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데라시마 경찰서로 연행하라.”라고 명령을 내리고 사라졌다. 뒤에 살아남은 사람은 다섯 명이었다. 경찰서에 도착하였으니 그런 명령을 내린 일이 없었고 다행히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다음날인 9월 5일 밤부터 국제 적십자사의 조사단이 온다는 소식이 각 경찰서에 하달되어 조선인의 학살은 중단되었다.

말을 타고 와서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하고 사라진 그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조선인 학살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본 군인이나 경찰일수도 있다. 그가 누구였던 두 형제는 그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라고 믿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바로 눈앞까지 닥아 온 죽음의 순간에서 기적적으로 두 형제는 목숨을 구하였다. 이때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두 형제의 삶을 더 깊은 믿음의 길로 인도하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양향모(광성교회 담임목사, 개혁주의목회자훈련원 원장, 양용근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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