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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메두사의 최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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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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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지아니 베르사체(VERSACE)는 1946년 이탈리아 남부 가난한 가정에서 봉재사였던 어머니와 가정용품 세일즈맨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아니는 어린 시절 봉재사였던 어머니의 공방에서 자라나며 자연스럽게 패션을 익혔다. 소년은 원단 조각으로 인형을 만들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벌써 9살 때 첫 드레스인 「원 숄더 벨벳 이브닝드레스」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봉재사인 어머니 밑에서 옷의 내부구조와 옷 만드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후에 뛰어난 재단실력을 보유한 몇 안되는 디자이너의 한명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대학에서는 건축학을 전공했으나 패션이 적성에 맞는 것을 깨닫고 어머니의 의상실에서 본격적으로 견습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거기서 옷의 장식기법과 소재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또한 매장에서는 판매를 통화여 소비자들의 욕구를 파악하는 등 패션 비즈니스를 위해 필요한 초석을 다졌다. 그는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1972년 26세 때 패션계의 본 고장인 밀라노로 갔다. 거기서 컬렉션을 디자인하는 프리랜서로 경력을 쌓아가면서 후에 자신의 브랜드를 세울 기초를 닦았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경영을 전공한 형 산토 베르사체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1978년 32세 때 밀라노 대표 쇼핑가인 비아 델라 스피가에 쇼룸을 오픈하고 그 해 자신의 이름을 건 여성복 컬렉션을 보임으로 곧바로 이탈리아 패션계에서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어 1979년에는 남성복 컬렉션도 성공을 거두면서 패션계에서 입지를 단단히 했다. 또한 여성복 디자인도 여동생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여동생의 아이디어를 여성복장에 수용하면서 특유의 관능적이며 현대적인 의상을 대거 선보였다. 이렇게 3남매의 경영과 기술의 협력으로 베르사체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의 패션계에서 명성과 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40대 초반에 벌써 귀족적인 남성복과 저렴한 남성복 라인, 마담싸이즈 브랜드, 캐릭터 캐쥬얼 그리고 화장품, 악세서리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시켜 베르사체 브랜드를 확고히 자리 잡았다. 지아니 베르사체의 디자인 특징은 바로 그 예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역사주의 의상을 기반으로 한다. 뿐만 아니라 여러 시대의 예술양식과 형태를 자유롭게 쓰는 포스트모더니즘 형태의 새로운 패션을 선보였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주의와 르네상스를 한 옷에 표현하거나 이탈리아 바로크시대와 미래주의를 혼합하여 새로운 문양을 창조 하였다. 그는 로고로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서 아테나 여신의 저주를 받은 괴물 메두사와 그리스 격자무늬를 이용했다. 이처럼 그는 다른 패션브랜드와 달리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을 비롯한 예술작품을 대단하고 화려한 패션으로 탄생시켰다. 또한 그는 현대미술에도 관심을 갖고 추상표현주의 팝 아트옵 아트도 즐겨 패션화하였다. 1991년 마를린먼로와 제임스딘의 얼굴이 그려진 팝 아트 이브닝 드레스를 발표했는데 이 드레스는 예술과 패션의 만남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대담하게 표현하면서 현대 패션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여성을 비하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는 자기 패션이 여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고 대답하며 남의 시선을 두려워 않고 지금까지 금기시 되어왔던 인간의 본성 성적욕구에 충실한 하이패션으로 80, 90년대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 그는 스타들과 적극적으로 교제하며 패션을 대중들의 관심영역으로 이끌어 냈다. 그는 자신의 패션을 유명 스타들에게 입혔는데 마이클잭슨, 마돈나 등이고 영국 무명배우 엘리자베스 헐리는 영화시사회에서 베르사체가 디자인한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나와 일약 스타덤에 올라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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