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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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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올해는 유난히 더웠다. 기상청의 기록을 매일 경신하는 가마솥더위는 견디기 어려웠다. 길기만 했던 여름의 무더위는 대지의 생명들에게도 많은 시련을 주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가을이 속히 온 것도 아니다. 가을이 오는 날은 더디기만 했다. 가을이라고 하지만 기온이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가을인가 하던 그때 갑작스러운 기온의 급강하는 대지의 생명들을 놀라게 했다. 이번엔 아직 채 겨울을 맞을 채비도 못했는데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여름날 비처럼 내리는 가을비를 어떻게 감당할지 몰라서 또 놀라야 했다. 금년은 가을을 그렇게 맞았다. 그래서인지 단풍은 참 예뻤다. 기온의 차이가 심하고 적당한 수분공급이 있어야 단풍이 곱게 물드는데, 아마 그러한 조건이 충족된 것이리라. 기억엔 거의 20여 년만의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이었던 것 같다.

대자연의 환경은 인위적으로 필요에 따라 조정할 수 없다. 다만 인간을 포함해서 대지의 생명체들은 모두 그 자연의 환경에 따라서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 인간은 겨우 더위와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냉난방설비를 만들어 일정한 공간 안에 숨는다. 하지만 지구를 식힐 수는 없으니 대지의 생명들은 알아서 적응해야 한다. 지구의 온난화를 걱정하면서도 대책을 강구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것도 인간의 한계를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펄펄 끓는 지구, 더위와 추위가 점점 심해지면서 봄과 가을은 상대적으로 짧아진다는 통계가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대지에 뿌리를 박고 생명들과 열매를 길러낸 풀과 나무, 곡식과 과일들은 여전히 지구에 사는 동물들과 인간을 다 먹이고 있다. 금년은 가을에 찾아온 태풍 때문에 걱정을 더했는데 먹을 만큼 열매를 허락했다고 한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 먹을 수 있는 양의 식물을 공급하고도 남는 열매를 허락했다. 인간은 걱정만 했지 특별한 대책도 강구하지 못했음에도 대지는 그 식물을 만들어주었다. 인간이 소비하는 식량의 양을 한 곳에 쌓는다면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것일 텐데, 그 엄청난 양의 식량을 대지는 한 해 동안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기적이다. 결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기적이다. 인간의 노동력이 없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임에도 그렇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작물을 살피는 것뿐 그 이상의 것, 즉 열매를 맺게 하고, 추수해서 먹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인간의 영역 밖의 것이라는 의미다. 분명히 땀을 흘리는 수고를 통해서 심고, 가꾸고, 거둬들이는 일을 했지만 누구도 열매를 맺게 하거나 익힐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허락을 받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니 더 그렇다.

하나님의 창조는 식물의 열매를 인간이 먹을 수 있고, 그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하셨다. 창조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본다면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이 창조라고 하는 기적의 사건의 증명인 셈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올 가을에 얻은 열매들은 창조를 통해서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을 다시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창조의 기적이 태초에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를 통해서 식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하신 은혜를 지나는 들녘에서, 그리고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요리한 밥상 위에서 확인하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자연이라고 한다.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아쉬운 것은 창조를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통해서 창조세계의 질서를 유지시켜주지 않는다면 인간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이 가을에 대지가 만들어준 가을의 넉넉함을 누릴 수 없다. 그것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들까지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다. 벌써 찾아온 겨울철새들은 무논이 얼어붙기 전, 들녘에서 낙곡으로 배를 채우고 있다. 녀석들은 겨울을 이 반도에서 지낼 것이다.

비록 인간이 자선을 베푼 것은 아닐지라도 추수하는 과정에서 떨어진 낙곡(落穀)까지 거두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덕분에 겨울철새들이 한반도를 많이 찾게 되었다. 녀석들에게는 겨울을 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터전인 셈이다. 식량이 절대 부족했던 때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추수를 한 다음에도 가족들이 총동원되어 이삭줍기를 했다. 한 톨의 벼까지도 눈에 띄는 것은 모두 거둬들여도 겨울나기조차 버거웠다. 오죽했으면 보릿고개가 있었을까. 그때는 지금처럼 철새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비록 의도된 것이 아닐지라도 철새들에게 먹이를 나눌 수 있게 된 우리의 생활도 기적이 아닐 수 없다. 6.25사변 이후 절대빈곤 가운데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쳐야 했던 때를 생각하면 기적이 분명하다.

한데, 삭막한 겨울날 대지를 덮은 백설까지 아름답게 느껴지게 하고, 그곳에 노니는 철새들은 인간에게 생명을 느끼게 할 것이니 이 또한 기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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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2.1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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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1.2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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