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분류

사체로 변한 베르사체의 최후...②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장자옥 목사

 

그는 부와 명성에 어울리게 오키오 도로상과 오스카 패션 상을 수상했다. 이렇듯 화려한 패션세계를 선보이며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던 지아니는 사생활 역시 화려하고 문란한 극치를 자랑했다. 그는 자신이 게이라고 공언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짧은 기간에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답게 사치를 미덕으로 삼고 상상할 수 없는 화려한 생활을 했다. 세계 최대의 휴양지 마이애미 키웨스트 42개 마지막 섬 베이사이드 해변가에 3천2백만 달러 저택에는 수많은 고가의 예술작품이 있고 금으로 마감한 실내 수영장이 3개나 있다. 그는 그 저택에서 유명 부자들과 저명인사들을 초대하고 파티를 즐겼다. 이렇게 화려하게 살던 지아니 베르사체는 1977년 7월 15일 마이애미 비취에서 아침 산책을 마치고 이탈리아 신문 한 부를 사들고 오던 중 저택 앞에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이제 51세의 한창 나이에 허무하게 비운에 가고 만 것이다. 그를 저격한 범인은 연쇄살인범 27세 청년 앤드류 쿠나난이라고 한다. 당시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는데 마피아의 개입설과 CIA까지 다양한 루머가 나왔고 경찰조사도 면밀했지만 정작 앤드류 쿠나난이 자살하는 바람에 진실을 밝힐 기회도 같이 역사의 미제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범인은 그의 동성연애자였다고 한다. 쿠나난은 유명한 고급 게이이며 남창이었다. 그가 죽은 후 패션계의 거물 안나 윈투어는 베르사체에 대해 “아르마니는 부인들이 입는 옷을 만들었고 베르사체는 정부(情夫)의 옷을 만들었다”고 평했다. 그의 돌연한 죽음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지안 프랑코 페레와 함께 이탈리아 20세기 패션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뜻하는 것이 되었다. 지아니 베르사체 그는 첫쌔, 비록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천재적 예술 감각의 소유자였다. 재봉사인 어머니 곁에서 그는 패션에 대한 선천적 DNA뿐 아니라 예술 감각을 한껏 익힐 수 있었다. 둘째, 그는 형의 경영능력과 여동생으로부터 여성 패션에 대한 조언과 영감을 얻었다. 이러한 형제지간의 협력과 도움이 베르사체를 단시간에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게 했다. 그러나 그를 부정적 시각으로 본다면 첫째, 그는 호화 방탕한 대표적 인사였다. 이란 팔레비왕이 자가용 비행기 변기를 금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그 누구도 실내 수영장 3개를 금으로 덮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뛰어난 그리고 성공한 예술가라고 일탈을 용서받을 수는 없고 부가 넘친다고 호화 방탕이 정당화될 리가 없다. 그는 쌓아온 부를 주체할 수 없어 육신적으로 탕진하다 허무하게 총탄의 이슬로 사라지고만 것이다.

그런가하면 같이 가난한 환경이었지만 카네기나 록펠러, 빌게이츠, 주윤발 같은 이들은 기부의 거성들로 만세에 세인들의 존경과 칭송을 받고 있다. 둘째, 그는 게이(동성연애자)였다. 정상적인 남녀관계를 떠난 젊은 남자를 성적파트너로 삼는 탈선과 비정상적인 성윤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부와 명예와 관록을 쌓아 놓고 그렇게 변을 당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이름이 베르사체(Versace)였는데 그의 최후가 이름대로 사체(死体)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지금도 그의 저택은 세계 최고의 스포츠스타를 무료로 숙박하게 하는 등 주택의 주가는 아직도 상한가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성공과 방탕과 어이없는 죽음을 보면서 사람은 타고난 만큼 이웃과 사회에 공헌해야 하고 또 받은 만큼 베풀며 살다가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상념에 젖었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그 마지막이 사체(死体)가 아니라 복된 최후로 만인의 추앙과 애도 속에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며 그의 저택을 지나쳤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