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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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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지난 연말 인터넷 뉴스검색 1위를 차지한 사건이 있었다. 도살장에서 도살을 당하던 중 한 마리의 개가 도망쳤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망친 개를 추적한 결과 집으로 돌아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새끼를 품은 채 젖을 빨리면서 죽어갔다고 한다. 동영상도 있었지만 기사를 읽으면서 차마 동영상을 열어볼 마음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복잡한 심정은 나만의 것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포털사이트의 뉴스검색 1위를 지속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댓글 또한 수 천 개가 이어졌다.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고 어떻게 탈출을 했는지 알 수 없고, 또한 어떻게 집까지 돌아갈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전해진 내용만 본다면 피를 흘리면서 집까지 돌아간 어미 개는 자기 새끼를 품은 채 죽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개의 품에는 새끼가 젖을 빨고 있었다는 것인데, 살기 위해서 탈출한 개가 돌아간 곳이 집이었고, 그곳에는 새끼가 있었으며, 물정과 상황을 모르는 새끼는 돌아온 어미를 반겼을 터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어미의 죽음도 모른 채 새끼들은 젖을 빨았을 것이다.

녀석들은 원했던 것도, 예상했던 것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황조차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뉴스를 접하는 경우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러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또한 그것을 동영상에 담을 수 있었는지?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지만, 전해진 대로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간만큼 잔인한 존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하기야, 인간이 식육으로 사용하는 모든 동물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까.....

탈출한 한 마리의 개가 선택한 마지막 행동을 통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모성이다. 본능적으로 녀석이 찾은 것은 자기 새끼가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 새끼를 품은 채 죽어갔다. 미물의 짐승이지만 자기 새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어미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은 그 자체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인간으로서 감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느껴지게 하는 녀석의 행동은 한참이나 멍~ 한 상태에 빠지게 했다. 뭔가 말을 해야 하겠는데, 어떤 말이 적당한 것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주어진 본분을 회피하기 위해서 동료를 죽이기도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자기보다 약한 자, 자기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유기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동을 한다. 얼마 전에도 아이를 굶겨 죽게 한 사건이 보도되면서 공분을 샀다. 단지 아이가 운다는 이유로 죽게 한 사건도 있었다. 미물의 짐승도 죽음에 이르는 극한 상황에서 탈출한 후 새끼를 위해서 자신의 마지막을 다하는데,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에서 무슨 말이 가능할까.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도 등장하는 미물들이 많이 있다. 지렁이나 개미와 같은 작고 힘없는 생명체들을 예로 교훈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을 교훈하면서 굳이 미물들을 이용하는 것은 왜일까? 동등한 입장에서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비교하자면 정말 미물만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인간으로서 자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보면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깨달아야 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악함과 한계이다. 인간은 이성의 능력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한 마음을 가지고 지구와 생명들을 파괴해왔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도리마저 저버리기를 너무나 쉽게 하는,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자만하는 어리석음을 살고 있다. 동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같은 동족에 대해서도 무차별하게 살상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과시하는 어리석음과 악을 행하면서도 자신의 문제와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의 오만이다. 생사와 관계가 없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죽이고, 잔인하게 해를 끼치기를 서슴지 않는 인간이 과연 그렇게 자만할 수 있는 것일지.

죽어가면서 새끼를 품은 어미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인간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임에도 인간의 위치를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라도 인간으로서 다르지 않은 속성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지구상의 유일한 이성적 존재임에도 행동은 이성이 없는 미물만 못하니 유구무언일 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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