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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35년간의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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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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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난 이 세상에 55년 동안 살아왔다. 아동기의 15년을 제외한다면 거의 35년간을 진정한 의미에서 허무주의자 즉, 겨울의 인간으로 살아온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55세에 쓴 신앙론의 서문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결여라는 의미에 있어서의 허무주의자로 살아온 것이다. 5년 전 나는 예수와 만났다. 내 생활이 일변되었다. 선악이 그 위치를 바꾸고 만 것이다. 50년 만에 내 삶 속에 봄이 찾아온 것을 알았다.” 그가 55세 되던 1887년 1월 22일에 쓴 이 신앙론 서문 속에서 우리는 무려 50년 만에 영혼의 봄을 맞고 있는 한 위대한 사상가의 탄식에 찬 신앙고백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참회록에 의하며 그는 유복한 유년기를 기독교 신앙 속에서 보냈다. 희랍정교회에 의해 세례를 받았고 그 신앙은 18세까지 지속되었다. 그가 11세였을 때 한 중학생이 그의 집을 찾아온다. 그 소년의 이름은 블라디미르 밀유틴 이었다. 주일 아침 그는 신대륙 발견보다 더 진기한 뉴스가 있다고 톨스토이에게 속삭였다. 그 신발견이란 바로 “신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들이 신에 관해서 배우고 있는 모든 것은 다만 인간이 만들어낸 조작품이라는 거야!” 1883년 일어난 이 일상적이고 작은 사건은 신앙의 확신이 없던 톨스토이를 야유와 환희 속에 빠트렸고 천천히 신앙의 영역으로부터 떠나도록 만들었다. 이듬해 영특한 그는 볼테르를 읽기 시작했고 이 신랄한 프랑스 사상가에게서 신에 대한 불손과 반신론을 배웠다. “난 신에 대한 볼테르의 야유에 반감을 느끼기는커녕 상쾌한 기분이 돼가는 내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그는 그날부터 예수와 이별했다. 그 당시에는 러시아의 모든 학교가 교리문답을 가르쳤고 정부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세례증명서가 요구되던 때였다. 15세가 되던 가을 톨스토이는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는 일을 중단해 버렸다. 18세 되었을 때 그는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영역으로부터 도주해 나왔다. 그리고 곧 러시아 특유의 겨울이 왔다. 그의 영혼 속에도 다시는 봄으로 회복될 것 같지 않을 중병의 겨울이 왔다. 그의 영혼이 아직도 겨울인 50세 이전에 톨스토이는 이미 평론가들로부터 대사상가라는 지상 최고의 지적 작위를 받은 후였다. 사람들은 그의 예술과 종교 사회와 인생 교육에 대한 통찰력과 저서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문학에 대한 그의 성공도 대단해서 그는 그때 이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같은 대작을 성공시켜 놓고 있었다. 기독교 역사는 곧 신의 뜻과 방랑하는 인간 속의 역사이다. 18세 때 동정을 버리듯 주님을 버린 톨스토이는 주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 35년이라는 세월을 탕진해야만 했다. 50세가 되던 어느 날, 그는 마치 한 마리 연어처럼 주님을 찾기 위한 참회 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모든 세속적 명예를 가로질러 고독과 참회의 비늘을 단 채 주님을 향해 역류해 올라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처럼 주님께 돌아온 톨스토이는 신음하듯 이렇게 썼다. “봄이 왔다. 이제야 비로소 난 잠이 깨었다.” 그는 고향에 돌아온 연어가 마지막 배란하듯 세 개의 빛나는 작품을 낳았다. ‘참회록’ ‘신앙론’ ‘부활’이 그것이다. 한없는 세속의 바다와 탁류에 휩쓸려가다가 어느 날 문득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을 거친 역류에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하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신앙의 진리는 그 역류의 결단과 회개조차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고 탕자 같은 우리의 등 뒤에서 지그시 밀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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