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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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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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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나가노(長野)라는 지명은 동계올림픽 때문에 우리에게 알려진 곳이다. 굳이 지명풀이를 한다면 긴 평야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 중부지방에 3천미터급 고봉(高峰)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가 나가노라고 하는 곳이다. 처음으로 찾아가는 곳이니 어떤 곳일지 궁금했다.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새로운 곳에 대한 공중관찰은 불가능했다. 궂은 날씨이기에 내가 탄 비행기는 구름을 뚫고 니가타공항에 착륙했다. 강한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리는 날씨가 왠지 더 설레게 했다. 말로만 듣던 눈의 나라(雪國)에 속한 지역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지만 평생 눈 구경을 하지 못한 사람처럼 설렜다. 겨울을 특별히 좋아하기에 다른 계절은 몰라도 겨울이면 매년 등산을 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운동부족으로 겨울산행은 어렵다는 판단을 한 다음부터다. 그러니 설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미 나는 나가노에 가 있었다.

나를 픽업하기 위해서 나온 목사님은 일상이라는 듯 내리는 눈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강한 바람과 함께 내리는 눈은 기온이 높은 탓에 도로에는 쌓이지 않고 바로 녹았다. 지나는 산과 들에는 쌓인 눈이 제대로 겨울을 정경을 만들어주었다. 고속도로 양옆에 장대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리는 지방인지 알 수 있게 하는 표식이다. 금년에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서 쌓인 눈이 적다고 설명을 하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선은 창밖에 있었다. 도로를 따라서 길 옆에 세워진 긴 장대에 눈금에 대신 색색의 페인트를 칠해서 박아놓았다. 그 높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3미터는 되는 높이였기 때문이다. 평소에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린다는 의미다. 적설량을 가늠할 수 있도록 세워놓은 장대들은 이 지방의 설경을 마음에 그리기에 충분했다.

아무 말 없이 창밖의 설경을 응시한 채 3시간 여 고속도로를 달려서 목적지인 나가노에 도착했다. 이미 어두움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깊은 산중의 도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눈길을 뚫고 달려서 도착한 나가노! 도시 뿐 아니라 그 주변의 높은 산들의 깊은 골짜기에도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국의 땅에서도 외지기로 유명한 깊은 산중 도시, 또 다시 그곳에서도 깊은 골짜기에 자리하고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도대체 한국인이 살지 않는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기에 일본인들도 평생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깊은 산중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의 알프스라고 일컬어지는 그곳은 계절마다 아름다운 경치가 일본에서 최고라는 것은 자타가 인정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러나 정작 그곳을 가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런데 그렇게 깊은 산골짜기까지 찾아들어가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어떤 사람일까? 그들은 왜 그곳까지 와서 살아야 했는가? 한일 간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하고 오래된 이유들이 있다.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일으키면서 천황의 피난처로 준비했을 만큼 깊고 깊은 오지인데, 그곳에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해야 했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니 ...

더 놀라운 것은 그곳에 한인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면서 예수님 안에서 소망을 찾아야 했던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참 놀랍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고백을 하게 된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예배당건물도 마련되었고, 40여 명의 신자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놀라움에서 감격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일본인들이 1/3쯤 되고, 제삼국의 사람들도 함께 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일본인들에게 전달되는 복음이 그들의 심령을 거듭나게 하는 것은 단지 분위기나 방법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고백을 재일선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다. 그만큼 폐쇄적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고, 그 사회로부터 결코 자유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나름대로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을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오직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 강권하심 외에는 사실상 답이 없다. 입국과정에서 동료 교수가 교회를 방문하러 왔다는 영어를 세관직원이 못 알아듣는 것을 보면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새삼 느껴야 했다. 결국 옆줄에 있던 내가 일본어로 거들고서야 무사히 입국사증을 받을 수 있었다.

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면서 복음은 민족, 국가, 사상을 넘어서 참된 소망을 주는 유일한 것임을 다시 깨달아야 했다. 예배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오지에 한국인들을 통해서 복음이 들어가게 했고, 그곳에서 신앙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게 하시는 것을 생각하니 놀랍기만 했다. 게다가 일본 중부지방의 여러 교회가 한 자리에서 만나기 위해서는 거리가 멀기에 많은 시간과 경비가 들게 되는데, 마다하지 않고 진리를 찾아 모여서 역사적 기독교회의 신앙을 잇고자 하는 마음을 보면서 오히려 감사했다.

나가노는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나의 기억에 남겨지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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