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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사미三寒四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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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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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미세먼지 주의보가 열흘이나 계속되면서 재난이라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눈이 따갑고 호흡이 어려울 정도의 탁한 공기는 마음의 상태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건강한 사람도 이정도니 병약한 사람들의 경우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언제부턴가 일기예보에 미세먼지지수와 상태에 대한 것이 포함되었다. 전국적으로 미세먼지가 어떻게 분포하게 될 것인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에 대한 수치까지 예보와 함께 주의해야 할 일들까지 예보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또한 근년에 들어서 이러한 현상을 표현하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삼한사미”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흘은 춥고 나흘은 따뜻한 한반도의 겨울기후의 현상을 의미하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는 말을 이용해서 만든 신조어다. 즉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가 낀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흘이 아니라 열흘 내내 미세먼지주의보가 발령되면서 불편한 것만이 아니라 정말 심각하게 건강이 걱정되는 상황이 되었다. 덕분에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마스크를 개발한 업체는 대박이 났다고 한다. 거리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한 번 사용한 마스크는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니 마스크 소비는 엄청나게 늘어났고, 해당 업체는 대박을 낸 것이다.

호흡이 불편한 것을 느낄 만큼 심각한 수준의 미세먼지가 열흘 내내 우리의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 어디다 하소연도 못한 채 죽음의 호흡을 해야 했다.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원인은 많지만 그 중에 하나인 중국에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나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국내의 사정 역시 다르지 않다. 당장 미세먼지 때문에 아우성이지만 정작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식이 태부족이니 말이다. 정책도 오락가락하니 어떻게 해야 할는지조차 모른 채 당하고만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지구라고 하는 같은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기억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제의 발전과 함께 소비가 늘어난 것과 비례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속도 역시 소비력과 비례한다. 따라서 과거보나 근년이, 근년보다 현재가 더 심각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러니 내년은 어떨지? 벌써 걱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불편한 것으로 끝이 아니라 건강에도 심각하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미세먼지에 대해서 대단히 민감해졌다. 당장 방진마스크를 착용하고, 가정에는 공기청청기가 필수용품이 되었다. 하지만 공기청청기도 밀폐된 장소에서 장시간 돌리면 오히려 안 좋은 물질이 발생해서 더 나쁘다고 하니 이래저래 걱정일 뿐, 묘안이 없는 것 같다.

어렸을 때도 같은 하늘 아래 살았는데 ..., 그때는 매일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을 보면서 살았는데 ..., 그것이 당연하고, 매일의 일상이었는데 ..., 그 하늘은 어디로 갔는지? 그 하늘이 그립다. 청명한 하늘 아래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공간도 그대로지만 호흡마저 버거운 공기의 질은 마음의 여유마저 빼앗아간다. 파란 하늘만큼이나 파란 마음으로 자라라야 하련만 요즘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면서 자랄지? 아이들의 마음에 하늘이 파랗다고 새겨지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인간이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개발한 시설, 기계, 자동차, 설비들, 거기에다 개발하는 과정에서 간과한 것들이 낳은 부산물이 미세먼지다. 공간이동을 빨리하기 위해서 만든 자동차, 편리한 생활공간과 설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만든 주거공간과 기계들은 미세먼지를 부산물로 남겨준다. 결국 너도나도 모두 원하는 것이 됨으로 부산물의 양이 자연정화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미세먼지는 재앙의 근원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원시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이니 어찌해야 할는지...

완전히 과거의 환경으로 돌이킬 수 없지만 미세먼지를 발생시키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그리고 책임을 지는 자세로 절제해야 할 것이고, 소비를 줄이는 것이 현재로서는 책임을 지는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공기의 질이 나빠진 것에 대해서는 모두 걱정하면서 정작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만족하신 지구공간을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가운데, 그 역할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거나 부정한다면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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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4.1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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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3.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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