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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누나의 사랑과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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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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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가난한 집안에 장녀로 태어나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남의 집 식모로 팔려가듯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받았으나 병든 부모님 약값으로 쓰기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세 남동생들은 쑥쑥 잘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배를 타고 외갓집에 갔다 오다 풍랑을 만난 배가 전복되는 바람에 사남매는 졸지에 고아가 되고 말았다. 누나는 할 수 없이 봉제공장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고자 시다(보조)로부터 시작해 잠도 못자면서 기술을 익히며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다. 한창 멋을 부릴 나이에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사 쓰는 것도 아까워 돈을 버는 대로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다.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몸은 병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소처럼 일해서 동생 셋을 대학까지 보내며 제대로 키웠다. 누나는 결혼이란 생각할 수도 없어서 사랑하는 남자를 눈물로 보내면서 이를 악물고 숙명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숱한 날을 보냈다. 그러나 몸이 이상해 약으로 버티다 쓰러져 동료들이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위암 말기라는 진단이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를 절제하면 살 수도 있다고 했다. 망설임 끝에 누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큰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아, 내가 수술을 해야 산다는데 3천만 원이 든단다. 어쩌면 좋겠니?”

골프를 치다 동생은 큰소리로

“누나, 정신 차려.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어?”

“아,,, 알았다. 미안 하구나”

둘째 동생에게 전화했다. 법대를 나온 변호사였다.

“누나, 요즈음 변호사 파리 날려!” 전화를 끊어버렸다.

막일을 하던 셋째가 아내와 함께 달려와, “누나, 전세 보증금 빼왔어. 우선 수술부터 합시다.” 누나는 동생부부를 부둥켜안고 울고 말았다.

수술하기 전날 밤 누나는 조심스레 옷을 갈아입고 밤안개 속으로 길을 가다 자동차에 치여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잠에서 깬 동생은 빈 침대 위에 놓인 편지를 발견했다.

“막내야, 올케, 고마워! 내 죽어도 너희들을 지켜줄게. 내가 그나마 전에 보험을 들어놔서 이거라도 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다.

누나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던 두 동생은 누나의 사망보험금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 막내를 협박했다.

“똑같이 나누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 법적으로 해결하겠다.”

처음에 막내는 포기하려 했으나 누나의 핏 값을 형들에게서 지키고 싶어 소송을 했다. 몇 개월의 소송 끝에 판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고 누나의 휴대폰 문자까지 읽어주자 두 형들은 얼굴도 들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사순절 기간에 이 누나의 사랑과 희생뿐인 감동실화를 읽으면서 불쌍하게 삶을 마감했던 누나의 선한 모습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님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것을 실감했다. 누나는 불쌍한 삼형제를 위해 모정을 대신해서 미련 없이 희생의 길을 갔다. 마치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이 되어 빛도 없이 희생하다 죽었다. 삼형제는 그 누나의 희생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이만큼 살다보니 삶이란 각기 자기 역할이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통분모라는 것이다.

그런데 첫째와 둘째는 인간의 공통분모는커녕 형제지간의 정은 물론 그렇게도 고마워해야할 누나의 사랑까지 짓밟아버린 비정한 인간 그 자체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누나의 장례식도 외면하더니 사망보험금은 양보할 수 없다고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나는 이들 형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팔아 은화 30전을 거머쥔 뻔뻔하고 완악한 가롯 유다의 탐심을 생각했다. 두 형제는 가롯 유다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멸시한 것처럼 누나의 사랑과 희생을 업신여긴 배신자에 불과했다. 언제나 배신은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빚어지는 패륜의 한 단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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