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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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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산고(産故)가 없는 생명의 탄생은 없다. 인간의 기술개발로 인한 무통분만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산모가 느끼는 두려움까지 없애지는 못한다. 하지만 산모는 두려움 때문에 해산을 못하겠다거나 안겠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번 산고를 겪은 사람은 두 번째 산고는 자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산고를 통해서 탄생하게 되는 생명이 주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그 기쁨이 없다면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을 자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산고는 여성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에 대한 권한을 임부에게 있다고 결정했다. 이 역시 인간의 기술개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일이다. 즉 태아의 생명만 죽일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와 관련한 문제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태아와 임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생각해야 하는 더 근본적이고, 동시에 상황적인 문제들이 내포되어있다. 그만큼 찬성과 반대를 말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생명에 대한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진다면, 그리고 그 다음에 주어지는 어려움 때문에 태아의 생명을 부정한다면, 인간 스스로의 존엄성과 생명권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인간의 기분과 필요에 의해서 인간의 생명은 선택될 수 있다는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세기에 들어와서 이념의 문제로 수백만 명씩 죽였다. 그 이유는 단지 이념이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다. 자기와 같은 이념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였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은 어느 편, 어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에 대한 주권이 인간에게 있다고 할 때 주어지는 결과를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태아의 생명에 대한 선택을 임부자신의 목으로 결정짓는다면, 임부에게 주어진 고통을 덜기 위한 선택이지만, 결국 생명을 죽이는 책임은 그대로 남겨진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있는 것인지? 또한 태아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임부가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일을 수행하는 산부인과 의사는 그냥 따를 수 있는 것인지? 의사도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면, 태아의 생명을 지킬 권한은 없는 것인지? 해결하고, 극복해야 하는 복잡한 일들이 이어진다. 현실은 어떤 것도 선을 그어 말할 수 없는 일이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태아의 생명에 대한 선택권은 임부에게 있다고 결정한 법안은 머지않아 시행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의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내려놓은 채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 인간의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존엄을 버린 채 인간으로 오신 것이다. 게다가 인간을 위한 희생의 제물이기를 자원하셨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과 신으로서의 자존심과 권위를 다 버리셨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존엄을 위해서 인간을 버리거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위해서 자신의 존엄을 버리셨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것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존엄을 드러내고, 인간으로부터도 존경을 받게 된 것이다.

주님은 산고가 아니 죽음의 고통을 자원하셨다. 죽음에 이르는 길을 자원하셨다. 그 과정에서 두려움과 고통, 모멸감과 자괴감,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분만이 느낄 수 있는 처절함을 아무 말 없이 감당하기를 자원하셨다. 왜? 그것은 오직 생명을 사랑하시는 것, 그 이상 어떤 이유나 목적이 없었다.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형상으로 지은 인간을 끝까지 인간으로 대하시고자 하는 것 이상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함으로 인간으로부터 어떤 보상을 요구하시는 것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임에도 오직 인간의 생명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인간을 위해서 고난을 자원하셨다. 하여, 그 길을 피하지 않으셨다. 핑계나 회피, 원망이나 책망도 하지 않으시고, 그 길을 자원하셨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길은 고난이었고, 그 결과는 생명을 얻는 것이었다. 그 고난이 없었다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은 없었을 것이고, 그 고난의 길을 회피하셨다면, 인간은 영원히 절망 가운데서 한탄과 죽음을 향한 고통을 경쟁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죽어가는 것 밖에는 어떤 소망도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받은 고난을 생각하면서 현실에 대한 생각들의 편린을 챙겨본다. 고난을 회피하는 세태, 책임은 부정하면서 즐기기를 원하는 세태를 보면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걱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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