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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미리 사는 봉쇄 수도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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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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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호 목사

계 약

여기 저기 땅을 물색하던 중 충주 장로님들 몇 분이 전화를 주었습니다.

“강 목사님! 한국 기독교 최초 봉쇄 수도원이 세워진다면 우리 남한의 중심지 중원의 도시 충주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들 몇 명이 주일과 수요일만 빼고 매일 저녁 모여서 기도회를 하였습니다. 충주에 봉쇄 수도원이 세워져야 한다는 기도입니다.”

이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수도원 장소를 물색하였습니다. 와보세요. 산속에 폐교가 있는 데 수도원 자리로 최적합한 곳입니다.”

가보았습니다. 첫 눈에 들었습니다. 충주시 산척면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이곳은 전쟁이 나도 모르는 곳이고, 공기 좋고 물 좋아서 죽어도 산척한다고 해서 산척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산척면 석천리(石川理)입니다. 산척면 중에서도 돌이 많고 물이 많은 곳입니다. 그래서 석천입니다. 바위에서 나온 물입니다.”

6.25당시 이북에 피난 나온 140가구 사람들이 이 곳에 텐트를 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분교를 세웠습니다. 학생이 150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옆집 할아버지는 이 자리에서 태어나 지금 76세입니다. 이 곳에서 살던 이북 사람들이 자리 잡히면서 한 명 두 명 내려갔습니다. 폐교되었습니다. 서울 집사님이 사서 기도처와 별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제는 늙어서 다니기 힘들어 부동산에 내놓았습니다.

작은 호수가 있습니다. 천등산(天登山)기슭입니다. 이름도 누가 지었는지 천등입니다. 휴거입니다. 박달재 밑입니다. 풍수를 보는 분이 말했습니다.

“이 호수 옆에 집을 짓고 아들을 낳으면 대통령입니다.”

그에게는 진담이고 나에게는 농담이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46평집을 완성하였습니다.

내가 좋다고 하니까 계약하기로 하였습니다. 3억 원 계약금을 주고 잔금은 모두 이회학 장로가 맡기로 하였습니다. 계약하는 순간 잔금까지 해결되었습니다. 나는 부담이 사라졌습니다. 산뜻하게 땅을 구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계약할 때 안 간 이유

나는 계약하는 자리에 가지 않았습니다. 막상 계약한다고 하니까 그 곳이 내 감옥같이 느껴졌습니다. 평생 머물며 나가지 않는 봉쇄지역입니다. 계약 끝냈다고 연락을 받는 순간 눈물이 감돌았습니다. 나도 원하지 않는 봉쇄 수도원으로 하나님은 나를 몰아치고 계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빈손으로 시작하여 땅 구입을 완벽하게 마쳤습니다. 이제는 봉쇄 수도원을 세우고 싶지 않다는 저항도 끝이라고 생각하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약간의 불안감도 감도는 눈물이었습니다. 기쁨과 감격도 섞여 있었습니다. 고마움과 감사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눈물 속에 들어있는 감정은 하나님만 분석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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