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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은 왜 만들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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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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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어느 한적한 시골 나이 든 노부부가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어머님이 물었다.

“그래 낮엔 어딜 갔다 온거유..?” “가긴 어딜 가? 그냥 바람이나 쐬고 왔지!”

아버님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내일은 무얼 할거유?” “하긴 무얼 해? 고추모나 심어야지!” “내일이 무슨 날인지나 아시우?” “날은 무슨 날! 맨 날 그날이 그날이지”

“아! 어버이날이라고 옆집 창식이, 창길이는 벌써 왔습니다....”

“....” 아버님은 아무 말 없이 반드시 누워 눈을 감고 있더니 “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겠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집 자식들은 철되고 때 되면 다들 찾아오는데 우리 집 자식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내 원....” 어머님도 긴 한숨을 몰아쉬며 푸념을 하셨다. “오지도 않는 자식 놈들 얘긴 왜해?” “왜 하긴? 하도 서운해서 그러지요. 서운하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유?” “어험~” 아버님은 할 말이 없으니 헛기침만 하셨다. “세상일을 모두 우리 자식들만 하는지...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자식 잘못 기른 내 죄지 내 죄야!” 어머님은 밥상을 치우시며 푸념을 하였다. “어험, 안 오는 자식 기다리면 뭘 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조용히 눈감으면 그만이지!” 하고 아버님은 어머님의 푸념이 듣기 싫으신지 휭 하니 밖으로 나가셨다.

다음날 어버이날이 밝았다.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아침부터 이집 저집에 승용차가 들락 거렸다. “아니 이 양반 아침밥도 안 드시고 어딜 가셨나? 고추모 심겠다더니 하우스에 고추모도 안 뽑고서...”

어머님은 이곳저곳 아버님을 찾아 봐도 간곳이 없었다. 혹시 광에서 무얼 하고 계신가? 광문을 들어 가셨다. 거기엔 바리바리 싸놓은 낯선 보따리 2개가 있었다. 풀어보니 참기름 한 병에 고춧가루 한 봉지 또 엄나무 껍질이 가득 담겨 있었다. 큰 아들이 늘 관절염 신경통에 고생하는 걸 알고 아버님이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또 다른 보따리를 풀자 거기에도 참기름 한 병에 고춧가루 한 봉지 그리고 민들레 뿌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작은 아들이 간이 안 좋아 고생하는 걸 알고 미리 준비해 두셨다. 어머님은 그걸 보시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제 이렇게 준비해 두셨는지, 엄나무 껍질을 구하려면 높은 산에 가야하는데... 요즘엔 민들레도 며칠을 캐야 저만치 되는데....” 어제 하루 종일 안보이시더니 읍내에 나가 참기름 짜 오셨던 것이다. 걷다보니 동네어귀 장승백이에 아버님이 홀로 앉아 계셨다. “아니 고추모는 안 뽑고... 여기서 청승 떨지 말구 어서 갑시다. 작년에도 안 왔는데 금년엔들 오겠수?” 아버님은 말없이 따라오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 보셨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집에 돌아온 아버님이 “자식이구 뭐구 씨암탉이나 잡아먹읍시다. 다른 집들은 외식 나가고 고기를 굽는데 우리는 닭이나 잡아 몸보신 합시다.” 그때였다.

“아브이, 어므이~” 하면서 재넘이 막내딸과 사위가 들이 닥쳤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다 한쪽 다리를 저는 딸이다. “오늘이 어브이날이라 왔어요. 아브이 좋아하는 쑥버무리 떡 해가지고 왔시유” 거기다 가난하지만 부지런한 사위가 산삼주와 카네이션을 가지고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딸 내외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장인 장모님 오래오래 사세유” 아버님은 민망하고 눈시울이 뜨거워 슬며시 일어나 나가셨다. 한참 뒤 밖에서 씨암탉 잡는 소리가 들렸다. “잘난 자식들 주려고 키웠는데 못난 딸자식이 효자구나!” 어머님은 혼자 중얼거리셨다.

“쭉쭉 곧은 나무는 팔려 나가고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잘 가르쳐서 잘 나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머리가 클수록 다 자기가 잘났다고 큰소리만 치는 세상인데....

어버이날은 어느 누가 괜히 만들어가지고 선량한 노인네들 마음만 아프게 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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