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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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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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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펄벅(Pearl Buck)이라는 인물을 검색하면 ‘소설가’ 혹은 ‘작가’로 소개된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녀는 1892년에 태어나서 1973년 별세하기까지 작가로, 그리고 휴머니스트로 우리 곁에 있었다. 그러니 한 세기 전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공유된 시대도 있으니 동시대의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녀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1931년 <대지>라고 하는 소설을 발표하면서다. 또한 결정적으로 그녀가 세상에 알려지고,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1938년 <대지>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소설 <대지>는 중국을 배경으로,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경험하고, 듣고, 배웠던 중국의 실제 역사를 소설로 담아낸 것이다. 따라서 <대지>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휴머니즘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등극한 그녀는 그 이후에도 여러 편의 소설과 시를 남겼지만 <대지>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녀의 작품 중에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것도 있다.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라고 하는 소설인데, 국내에는 1963년에 번역 출판되었지만 기억하는 이조차 없다. 최근에 재번역을 해서 <살아있는 갈대>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장로교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서 3개월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중국으로 갔고, 그곳에서 자랐다. 그녀는 그곳에서 성장기를 거치면서 중국의 역사, 문화, 지리, 언어까지 중국인 못지않게 체득했다. 중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다음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대학을 마쳤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난징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중국을 떠나야 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그녀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녀의 관심은 극동의 작은 나라 한국에 이미 와 있었다. 중국은 갈 수 없지만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고아들이 죽음 앞에 놓여있는 것을 안타까워한 그녀는 자신이 받은 노벨상 상금과 인세를 모아서 전쟁고아들을 보듬어 안겠다는 뜻을 세웠다. 1949년 웰컴하우스(입양기관) 설립, 1964년에는 펄벅 인터내셔널(복지재단)을 설립해서 전 세계의 전쟁고아들을 보듬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작품을 구상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그려내고자 한 것은 휴머니즘이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우리나라는 찾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해방과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처참하게 파괴된 사회적 현실 앞에서 절규했다. 결국 그녀는 이 땅에 버려진 아이들을 보듬어 안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녀는 1967년 부천의 심곡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곳에서 이미 사업을 일구고 있었던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가 그녀에게 대지 만평을 기부하면서 심곡동은 펄벅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펄벅과 유일한 박사는 해방 전부터 알고 있었던 관계였는데, 전쟁이 끝난 후 펄벅이 자신의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했고, 당시 한국의 처참한 현실을 경험하면서 작품은 작품대로 작업을 하면서 직접 전쟁고아들을 보듬어야겠다는 결정을 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유일한 박사는 펄벅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땅을 제공한 것이고, 그녀는 이미 설립한 재단을 통해서 소사희망원(Sosa Opportunity Center)을 세워서 전쟁고아들과 혼혈아동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1975년 희망원이 문을 닫기까지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2000여 명이나 되니 한 사람의 휴머니스트가 주님의 사랑으로 지켜낸 생명들이고, 그들 중에는 지금 사회 각처에서 뛰어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유명한 인사들도 있다.

<대지>의 작가 펄벅, 그녀는 미국인이다. 그리고 이미 1973년 별세했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와는 관계가 없는 아주 먼 이야기이고, 먼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 곁에서 말년을 지내면서 우리의 고아들을 보듬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런데 우리는 그녀의 큰사랑을 잊은 채 제잘 난 맛으로 폼만 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벽안의 여인 펄벅, 그녀는 인종과 언어를 넘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생명을 섬기는 삶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살았다. 그리고 그의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을 가까운 부천에서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잊고 있는 것이 많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천년 전 예수님을 따랐던 무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께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단지 자신의 손에 들려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일이 아닐까.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어진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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