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목회

성경속세상 분류

강낭콩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이종전 교수

 

여름장마가 시작될 때 수확해야 하는 농작물들이 있다. 보리, 밀, 감자와 강낭콩이다. 그런데, 이 작물들 중에 감자와 강낭콩은 공통점이 있다. 수확할 시기를 놓치면 바로 썩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반드시 적당한 시점에 거두어들여야 한다. 하루, 이틀이 무슨 상관이랴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대했다가는 봄내 농사한 수고가 한순간에 모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즈음은 보리 수확이 한참인 때와 겹치기 때문에 이모작을 하는 농가에서는 감자나 강낭콩을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하여, 알면서도 자칫 시기를 놓치게 되면 낭패를 맞게 된다.

금년엔 옥상에 감자도 심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토심이 얕다는 한계 때문에 생각을 하다가 결국 포기를 했다. 대신에 강낭콩을 심기로 결정을 하고 50여 포기를 심었다. 활착이 잘 안 되는 것을 보면서 토질이 문제인지, 아니면 걸음의 문제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봄날을 보냈다. 그래도 뿌리를 내린 녀석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위안을 삼았다. 개중에는 잘 자란 놈도 있지만 겨우 꼬투리 하나에 열매도 하나만 달랑 달고 있는 녀석도 있다. 같은 공을 들였고, 똑 같이 물을 주었는데 천차만별이다.

그러구러 봄날이 지나고 콩잎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달려있는 꼬투리를 살펴보았다. 언제쯤 거두는 것이 좋을지 매일 한 번씩 콩잎을 들춰보면서 점검을 했다. 하지만 어디 똑같을 수 있겠는가? 같은 포기에서도 열매가 달리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적당한 시점을 찾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을 주다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물주는 것을 포기하고, 바로 콩대를 뽑았다. 그리고 콩대를 거꾸로 들고 콩꼬투리를 따기 시작했다. 얼마나 열렸을까?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런대로 두 끼 정도는 성도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양이 되는 것 같았다.

소쿠리에 담아놓고 도시에서 콩을 까는 것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틀을 보냈다. 꼭 이틀 만에 몇 사람이 모여 콩을 까기 시작했다. 그런데 겉에 있는 것들은 아무렇지 않았게 보였는데 그 사이에 속에 있던 것들은 썩었다. 딱히 습한 곳도 아닌 너른 공간에 공기가 통할 수 있는 소쿠리에 담아두었건만 속에 있는 콩깍지가 썩어있었다.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전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모자랐다. 아쉬운 마음으로 알맹이까지 썩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까보라고 했다. 다행히 알맹이는 썩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싹이 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생명력의 놀라움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수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수확을 해야 하는 것이 강낭콩이기 때문에 이틀만에도 싹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단 이틀이다.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시간이 ... 이렇게 위대한 생명력이 없다면 인간은 강낭콩을 먹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 강낭콩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조건만 맞으면 어디서나 상관없이 생명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한다. 눈치나 환경을 따지지 않는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여건만 된다면 싹을 틔운다. 다시 생명을 이어가면서 인간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사명을 다한다.

인간 이외의 생명을 가진 것들은 각각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생명을 이어간다. 여건이 맞지 않으면 잠시 숨고르기를 하면서 다시 기회를 본다. 그러다가 생장의 조건이 어떤 형편으로든 되면 싹을 틔운다. 가끔 지나는 길에서 만나는 경이로운 것은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를 뚫고 고개를 내미는 풀들이다. 한없이 여리기만 한 것처럼 보이는 풀 한 포기가 아스팔트를 뚫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는지 모를 만큼 경이롭다. 바위틈에도, 때로는 기와지붕에도 싹을 틔우고 있다. 녀석들은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창조주가 준 녀석들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여름이 깊어갈 즈음 새로운 입맛을 준 강낭콩. 올해는 직접 길러서 그 맛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그런지 새삼 창조주의 은혜를 생각하게 된다. 다양한 먹을거리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즐기라고 하셨는데, 때를 따라 누릴 수 있는 기쁨까지 주셨으니 감사한 일이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때, 강낭콩은 신세계의 맛과 함께 결핍된 영양, 특별히 단백질을 공급하는 것이었는데, 언제 부터인가 천덕꾸러기 내지는 존재감 자체가 없어진 콩이 되고 말았다. 금년은 강낭콩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어진내교회 목사>

관련자료

  • 이전
    작성일 2019.08.21 15:46
  • 다음
    작성일 2019.07.31 10:07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