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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맨 권 문현씨의 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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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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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까만 고급 세단이 들어오면 그는 빛의 속도로 반응한다. 번호판 확인은 필수. 두 팔을 쭉 뻗어 문을 연다. 그리고 머리 숙여 인사한다. 그는 이렇게 하루에 9시간을 서서 1천 번 인사를 하고 있다. 특기는 진상손님 마크, 온갖 욕설 갑질을 쏟아내며 문전 쇄도해도 그는 거뜬히 막는다. 악질 손님도 그의 슈퍼세이브 앞에선 맥을 못 춘다. 서울 여의도 특급 호텔 콘래드 서울 객실팀 권 문현(66)지배인. 그는 호텔업계 레전드 수문장이다. 호텔로 들어오는 차를 맞이하고 로비 문을 여는 도어맨(doorman)이다. 이 일만 43년째. 1977년 조선호텔에서 36년 일하고 2013년 정년퇴직 했으나, 그해 콘래드 서울 정직원으로 스카우트 됐다.

한 호텔에서 정년을 채운 직원도 드문데 다시 정직원으로 스카우트 된 경우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벨보이라 낮춰 부르다가 지금은 ‘호텔리어’, ‘컨시어지’라며 인기직종이 되었고 유학파 도어맨도 있다.

그러나 경남 합천 빈농의 아들 권씨는 가난을 끼고 농사도 짓고 공사판 막노동도 했으나 운명적 가난을 떨치고자 1977년 차비만 들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건설회사 공사장에서 몇 달을 일하다 하루는 친구가 호텔에서 사람을 구한다기에 무턱대고 찾아갔다. 호텔 곁에도 가본 일 없는 시골뜨기가 1977년 호텔 벨보이가 되었다. 젊었을 때는 뭔가 할 것 같고 뭐라도 될 것 같았다. 더 나은 자리로 상승하지 못해 자괴감도 들었으나 지금은 작지만 나만의 자리를 버텨내며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한창때는 사무실 근무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으나 지금은 오히려 친구들이 아직도 일하는 저를 부러워합니다. 의자에 앉던 친구들은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는데 저는 식사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줄곧 서서 일하지만 아픈 것도 없고 살찔 틈도 없다”고 한다.

근무는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 오후 3시부터 자정까지 2주씩 번갈아가며 한다.

특기한 것은 첫째, 하루 9시간 내내 서있으면서 차와 호텔 문을 열며 1천 번 인사를 한다. 도어맨은 문자 그대로 그 호텔의 얼굴이다. 나는 목사로서 50여년을 예배시간마다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여러 학교에 강의 나가면서도 계속 인사를 하면서 지냈다. 지금도 은목교회와 시니어문화아카데미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언제나 환하게 반기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도 환대와 반갑게 맞이하는 인사에 있다.

둘째, 권씨는 고객의 차번호를 한창때는 300~400개를 외웠다고 한다. 특히 조선호텔은 정부와 산업계 명사들이 고객이기에 차번호를 알아 그 차주의 성격에 맞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차 번호 알기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지금도 200개 정도는 외우고 있다. 사실 나는 목회 50여년에 중고등학교 교목 5년간, 인천여자신학 18년, 그 외 지방신학 23년 등 교인과 학생이름 속에서 살았다. 목회할 때 어린애 이름까지 다 외우고 있어야 그 부모와 함께 교회에 올 때 그 아이 이름을 불러주어야 기뻐했다.

하나님께서도 사명자를 부르실 때 아브라함아! 모세야! 다윗아! 베드로야! 바울아! 이렇게 이름을 부르심으로 친근하게 대면하셨던 것이다. 또 권씨는 그날 조간신문 3개를 정독하고 특히, 동정란에 주목. 그 인물들이 호텔에 오는 것을 알고 대처했다.

셋째, 감정노동 현장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비법은 즉시 해소. 듣는 즉시 흘려버리기이다. 분을 삭이는 게 버릇이 되어 감정이 납작해졌으며 감정이 가슴에서 솟구치지 않는다. 수도 없이 감정을 눌러대다 보니 다시 화와 분을 낼 수 있게 감정자체가 복원되지 않는다고 한다. 직장과 일에는 스트레스가 되어 그것이 쌓여서는 안된다는 철저한 직업의식인 것 같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지라 남은 스트레스는 등산가서 탈탈 털어내고 막걸리 한 잔으로 훌훌 날린다.

IT회사에 다니는 아들이 어느 날 “아버지, 아버지의 그 삶을 저도 닮고 싶어요.” 할 때 어떤 칭찬보다 값지고 얼마나 기쁜지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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