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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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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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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옥상에 기르고 있는 백봉(오골계) 두 마리가 거의 동시에 포란을 시작해서 3일 간격으로 각각 부화를 성공시켰다. 한 마리는 네 마리의 병아리를, 또 한 마리는 두 마리의 병아리를 부화시켰다. 네 마리를 부화시킨 어미가 기르고 있는 병아리 중 한 마리는 어미들의 이지메 때문에 결국 몇 마리의 닭을 기르고 있는 다른 곳으로 보내야 했다.

문제는 계사(鷄舍) 안에서 어미가 각각의 새끼를 기르고 있기 때문에 발생했다. 어미들은 자기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운다. 그리고 상대의 병아리를 쪼아댄다.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병아리들은 혼비백산하면서 도망을 다닌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두 마리의 병아리를 부화시킨 어미가 일방적으로 강하고 집요하다는 것이다. 이지메로 인해서 세 마리만 기르고 있는 어미는 자기의 새끼들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세 마리의 병아리들은 아직 작기 때문에 울타리 구멍을 통해 옆의 청계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도망을 친다. 때로는 밖으로 튀어나왔다가 밑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몇 번이나 옥상 잔디밭에서 목을 놓아 울고 있는 병아리를 올려주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먹이경쟁에서 세 마리의 병아리들은 밀리기 시작했다. 두 마리를 기르고 있는 어미가 당연히 먹이통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마리의 병아리는 아예 먹이통에 들어가서 유유자적하면서 배불리 먹는다. 그동안 어미는 다른 병아리들이 근처에 얼씬거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고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녀석들이 실컷 먹고 나서 한쪽에서 쉬게 되면 그때서야 세 마리를 기르고 있는 어미가 새끼들을 부른다. 그러면서도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상대의 눈치를 보면서 새끼들과 먹이를 먹는다. 그러다 갑자기 상대가 달려들면 병아리들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한다.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눈칫밥을 먹고 겨우겨우 살고 있다.

그렇게 서너 주간을 지내다보니 두 마리의 병아리가 사흘이나 늦게 부화했음에도 성장 속도가 빠른 것이 눈에 띄었다. 녀석들은 깃털과 꼬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세 마리의 병아리들은 먼저 태어났음에도 현저하게 발육상태 늦다. 어미도 체력을 빨리 회복해야 하는데, 그나마 병아리들을 챙기느라 정작 자기는 먹지를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싸우기도 하더니 이제는 싸우는 것을 아예 포기한 상태다. 그러니 병아리들을 지켜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두 마리를 기르는 어미닭이 공격해오면 병아리들은 일단 옆의 청계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줄행랑을 친다. 어미는 부르지도 못한 채 상대가 차분해지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조용해지면 다시 병아리를 불러댄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 마리를 따로 살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물의 세계에서 경쟁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일단은 그냥 두고 보자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매일 녀석들의 줄행랑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니 녀석들이 측은하고 안타깝다. 발육상태가 많이 안 좋기 때문이다. 현저하게 차이가 날 만큼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는 녀석들은 어쩌면 어미조차도 떠나서 편안하게 지내기를 바라는지 모른다. 당분간 그냥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현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그냥 있을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경쟁하는 동물의 세계에서 어미닭들이 자기 새끼를 길러내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는 현장을 매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어찌 보면 사람들의 세계와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아파지기 시작했다. 어미의 능력에 의해서 새끼가 길러지는 과정에 다른 병아리들은 먹이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쉬지도 못한 채 눈치로 살아야 한다. 매일 긴장의 연속이고, 이리저리 부딪치는 것과 공격까지 당하기 때문에 솜털조차 성하지가 않다. 같은 처지이지만 어미가 능력이 없으니 병아리들도 몰골이 말이 아니다. 다른 것은 그만 두고 마음 놓고 편안하게 먹이를 먹을 수만 있어도 좋으련만 그마저도 용납하지 않으니 병아리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세간에 뜨거운 감자가 된 한 정치인의 모습이 겹친다. 사실의 진위를 떠나서, 아니 모든 것이 정당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학생들의 엄마가 자기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까운 지인의 딸이 의학전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삼수나 하면서 열심히 공부만 했는데... 결국은 금년에 포기를 하고 말았다. 어느 날 내게 가족들과 함께 찾아와서 포기했음을 알리는데 마음이 아팠다. 그 말을 전해들을 때가 마침 잘난 어미에 관한 소식이 세상에 알려질 때였다. 답은 공부만 해서 될 일이 아니었고, 어미를 잘 만났어야 하는 것이었다.

두 마리의 어미는 자기 새끼들이 먹이통을 차지하도록 지켜주는 동안 다른 세 마리의 병아리들은 언감생심이다. 근처에 배외하는 것도 용납이 안 된다. 그러나 두 마리는 당당하다. 계사 어디든 활보를 한다. 그러나 세 마리의 병아리는 구석과 구석을 오가며 활동량도 턱없이 적다. 그나마 어미가 날개를 펴고 품어주면 구석에서 잠시 쉼을 얻는 것이 고작이다. 어찌 그렇게 사람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지 ... 마음이 아프다.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어진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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