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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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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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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믿음은 현재다. 과거도 미래도 아니다. 현재에서 자신의 고백과 삶이 같은 것일 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현재의 그 믿음은 생명력을 동반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믿음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으로 드러난다. 아무도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책임지거나 대신 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께는 영원히 갖고 계신 뜻이 있고, 그것에 대한 깨달음과 믿음으로 고백함으로 살고 있는 현재가 있을 뿐이다. 과거는 이미 자신의 영역을 벗어났고,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담보할 수 없다. 다만 현재에 대한 책임만 유효할 뿐이다. 과거의 것은 이미 지났기에 돌이켜질 수 없는 것에 비해 미래의 것은 믿음으로 현재에서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언제나 영원한 현재이다. 지금은 영원의 현재이기 때문에 그 순간의 현재는 영원한 것이다. 아무리 미래를 위해서 꿈을 꾼다고 하더라도 현재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가 꿈꾸는 미래는 그에게 미래가 아니다. 내일부터 신앙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에게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 내일 그렇게 살아야 하겠다는 필요와 깨달음과 각오가 있다면 내일로 미룰 일이 아니라 지금 그렇게 살아야 한다. 지금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과 함께 고백에 일치하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일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 내일은 분명히 다시 그 다음날로 미워지거나 아예 그날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과거에 멈춰있는 듯 과거만 말하고 있다면, 좋게 말해서 추억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은 추억일 뿐이다. 추억은 생명력을 동반시키지 못한다. 언제나 거기에 머물게 할 뿐이다. 따라서 과거를 말하고 있다는 것은 성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생명력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언제나 현재이어야 한다. 지금 깨달은 것에 대한 고백과 함께 그 말씀에 합당한 자신의 모습과 생활이 있어야 한다. 그 생활은 언제나 현재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신의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 믿음은 현재에서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단지 관념적 동의가 아니라 실천적 의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깨달음과 고백, 고백과 삶은 언제나 하나이어야 하며, 그 자신의 인경이다. 따라서 그것은 언제나 현재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오늘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내일부터 하겠다고 하면 그 내일이 그에게 없거나 오늘과 같은 모습일 뿐이다. 오늘 응답함이 없는 내일은 오늘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내일부터 열심히, 혹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아무리 반복해서 다짐할지라도 그 내일이 다르지 않을 것은 오늘 깨달은 것에 대한 삶이 없었기 때문에 내일도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내일을 다짐하는 사람이라면 내일이 아니라 지금 그렇게 살아야 한다. 지금 그렇게 살 때 내일은 오늘 다짐한 그 내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믿음대로 살지 않는다면 내일도 오늘과 같은 내일일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믿음은 내일이 없다. 오늘이 있을 뿐이다. 깨달은 것을 오늘 실천하는 것이 믿음이다. 물론 누구도 완전할 수 없기에 완전한 믿음 역시도 없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책망하면서 깨닫게 하신 것이 믿음은 은혜라는 사실이다. 오늘 응답하는 것조차도 은혜인 것을 고백한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에 진실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또 다른 목적을 전제한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의 현재에 대해서 질실할 뿐이다.

또한 믿음은 시간적인 의미에서의 현재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응답하는 당자로서 자신의 인격이다. 현재를 믿음으로 사는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믿음은 자신의 인격에 담긴 현재이다. 종교적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이기 전에 자신의 인격에 담긴 것이어야 한다. 즉 인격에 담겨 인격으로 드러나는 믿음이어야 그 사람의 믿음이고 생명이 있는 믿음이다. 따라서 종교적 의식에 담긴 것 이전에 자신의 인격으로 담아내는 믿음이어야 한다. 만일 인격에 담긴 믿음이 아니라면 십중팔구는 종교적 의식에 담긴 믿음이 보여질 뿐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인격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자신에게 진실한 것 이상이 아니다. 어떤 외적, 종교적인 것으로 포장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진실한 것과 비례한 순수한 것이다. 그것은 외식이나 형식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진실함, 그것이면 된다.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어진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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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12.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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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11.2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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